잊어야 할 기억만 선명해서요.
기억은 실처럼 하나로 길게 이어지는 거라고들 하던데 어째 내 기억은 다 이렇게 조각조각 나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곱게 빨아서 건조대에 널어둔 수면안대를 찾으려니 온 집안을 뒤져도 안 나온다. 며칠 전에는 현금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돈을 어쨌는지는 깜깜해 황당하게 돈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정말로 누가 필름을 뚝 잘라내 가져간 것처럼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잊어야 할 기억들은 선명하게 남아 몇 년이고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가령, 그 사람과 걸었던 식물원의 온기라든가 냄새라든가 하는 아주 추상적인 것까지도 마치 어제 일처럼 뚜렷하게 기억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