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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Aug 01. 2020

장마철에는 나사가 풀리는 편이라서요.

당신은 비는 무슨 색인가요?



일주일째 한껏 요상스러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비가 쏟아져 내렸다가, 이내 비는 멈추고 마른 하늘에 번개가 꽂히기도 하고, 종일 공기는 끈적해 마음까지 눅눅해지곤 한다. 올해는 장마가 그냥 오는 듯 마는 듯 지나가나 했는데, 뒤늦게 찾아온 장마는 어째 떠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장마철에 스스로 '나사가 풀리는 편'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 외에 더 적당한 설명을 찾질 못해서다. 



평소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는 편이다. 그래서 잘 열리지 않는 병 뚜껑을 따는 일이나, 체구에 비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20리터 들이 생수통을 가는 일과 같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용을 쓰는 편이다. 친구들은 그럴 때마다 "병 뚜껑 따달라는 정도는 좀 부탁하고 살아라"하고 핀잔을 주곤 한다. 그러면 나는 또 웃으며 "이 정도는 나 혼자서 할 수 있다고!"하며 맞받아친다.


그런데 날씨만큼 요상하게도, 장마철만 되면 자꾸 느슨해지고 싶어진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평소 같으면 갑자기 훅 들어오는 상대방을 피해 열 걸음쯤 뒤로 물러날 상황에서도, '그래, 거기까지 들어와도 OK'라고 답하고 싶어진다. 요상스러운 날씨를 핑계 삼아 나도 요상스럽게 상대방의 방어선 그 안쪽에 슬쩍 한쪽 발을 넣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한 상황까지 몰린 채로 일주일을 보냈다. 가능한 한 티를 내지 않고자 하였으나, 몸 상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고장이 나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열에 들떠 잠에서 깨곤 했다. 무조건 반사 같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몸에 열이 오르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난다. 울고 싶은 기분도, 울고자 하는 의도도 없이 그냥 눈물이 고인다. 그 왜 있잖아, 하품 하면 눈물 나는 것처럼. 손등으로 대충 눈가를 문질러 닦는데, 이번에 새로 산 팔찌가 반짝이는 게 제법 마음에 든다.



내가 몸살이 났다는 소식에- 아프냐, 뭐 필요한 건 없냐, 밥은 먹었냐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들의 걱정이 새삼 고맙고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평소 같으면 마음이 아니라 낯이 간지럽다고 말할 위인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정말로 마음이 노곤노곤 녹아내렸다.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웃음이 비집고 나올 만큼 호들갑을 떨어주는 이를 만나고 싶어졌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의 머리칼을 정성스럽게 쓸어넘겨주며 고맙다고, 덕분에 벌써 다 나은 것 같다고 말해야지.



오늘은 밤새 최저 온도로 설정해두고 잔 에어컨 덕분에 열이 더 올랐다. 열 때문에 그렇다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침대에 누워 뒹굴다 보니, 이대로 영영 원고 작업은 시작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겨우 일어나 키보드 앞에 앉았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만년필이라도 쥐고 멋진 글을 휘리릭 써내리고 싶지만- 그건 그냥 희망 사항이고 :-) 일단 일기라도 써보자는 심산으로 첫 자를 타이핑했다.



자, 여기까지가 저의 장마철 나사 풀린 이야기랍니다. 당신은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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