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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Aug 26. 2020

달큰하고 섹시한 초단편 소설 쓰기

커피, 열대야, 위스키, 시계, 셔츠, 작업실.

*작가의 인스타그램(@iam.momo)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받은 소재들을 하나의 초단편 소설로 엮어내는 이벤트성 집필입니다 :-)

**주어진 소재는 '커피, 열대야, 위스키, 시계, 셔츠, 작업실'이며 글을 쓰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습니다.






M은 턱을 괸 채로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무소음 시계의 초침을 한참 바라본다. 시계가 원래 이렇게 조용한 물건이라면, 그동안 내가 보아온 째깍째깍 시끄러운 물건들은 다 무엇이었나 생각하던 참이다. 조용히, 그러나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시계의 바늘은 새벽 1시 조금 넘은 애매한 시간대를 가리키고 있다.


"위스키?" B가 물었다.

"그거 말고. 커피. 시원한 걸로." M이 답했다.


B는 작업실 한켠에 있는 작은 냉장고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본다. 정신 사나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맥주와 에너지 음료가 가득 차 있다. B는 한쪽 눈썹만 치켜올린 채로 냉장고 안을 살핀다. 그리고는 페트병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 하나를 꺼낸다.


"이것밖에 없는데. 인스턴트 괜찮아?"

"카페인만 들었다면 뭐라도 좋아. 나 지금 금단 현상 올 것 같거든."

"카페인 중독이구만."

"너는 알콜 중독이고?"


M은 B가 던진 커피병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낸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페트병을 한 손에 꼭 쥔 채로 B를 슬쩍 흘겨본다. B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웃는다. 그리고는 한 입에 위스키 잔을 털어 넣는다. M은 떫떠름한 얼굴로 페트병 뚜껑을 따고는 인스턴트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진짜 술 안 마셔?" B가 다시 물었고,

"저는 지금 이완 보다는 각성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 M이 답했다.

"나는 너 안 잡아 먹을 건데요."

"아, 저는 붉은 용 사주라 안 잡아먹히죠. 대신 좀 잡아먹는 편."


저를 잡아 먹겠다는 말에 다시 웃음이 터진 B는 위스키 잔에 다시 술을 채우곤, 손목에 감겨 있던 시계를 풀었다. 잡아 먹힐 준비를 하는 거냐는 M의 물음에 B는 자꾸 헛소리 할 거면 택시 태워 집에 보낸다는 협박을 척하고 붙인다. 그리곤 에어컨 온도를 한껏 낮추고, 셔츠의 단추를 두 개쯤 더 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있는 작업실의 실내 온도계는 28도를 띄우고 있었다. 열대야였다.


M은 B의 작업실 벽면에 걸린 기타를 들고 와 손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전에 기타를 좀 배운 적은 있으나, 별로 진지한 학생은 아니었던 관계로- M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고는 영화 Once의 O.S.T인 Falling Slowly의 일부 소절 뿐이었다. 그마저도 마디를 넘어갈 때마다 '띵'하고 되도 않는 소리를 낸다거나 두 박자 쯤 쉬어야만 했다.


"근데, C 마이너 코드가 어떻게 잡는 거더라? 생각이 안 나네. 배웠는데!"

"약지랑 새끼 손가락을 붙여야지."


M은 손가락을 괴랄하게 꼬아가며 기타 코드를 잡아보겠다고 애썼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B가 M의 손가락을 잡아 제 자리를 찾아주었다. M의 손가락에 닿았던 B의 손끝이 불현듯 몹시 가려워졌다. B는 괜히 손끝을 반대쪽 손바닥에 쓸어 보았으나 어쩐지 간질간질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이내 기타 놀이에 흥미를 잃은 M이 가방을 뒤적여 화장품 파우치를 꺼냈다.


"손 줘봐. 코드 가르쳐 줬으니까, 내가 선물 줄게."


B는 매우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곤 양손을 등 뒤로 감췄다. M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B의 한쪽 손목을 낚아채 단단히 쥐었다. 한 손으로는 B의 손목을 그러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화장품 파우치를 뒤져 아이라이너를 꺼냈다. M은 입술 사이에 아이라이너를 물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거침 없이 B의 손목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자, 선생님. 제가 시계를 하나 드리죠. 롤렉스가 좋으세요? 피아제가 좋으세요?"

"뭐하는 거야? 이거 지워지는 거지?"

"반지도 좀 드릴까요? 다이아? 사파이어?"


손목과 손가락의 얇은 피부 위를 슬쩍 지나는 아이라이너의 감촉에 B의 목덜미에는 이미 소름이 양껏 돋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M은 바보처럼 낄낄거리며 낙서 삼매경이었다. 기분이 요상해진 B는 M의 손아귀로부터 슬쩍 손목을 빼내려고 했으나, 저런, M은 생각보다 힘이 셌는지도 모르겠다. B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M의 장난에 동참해주기로 한다.


"그런데, 이 시계 고장난 거 아닌가요? 왜 계속 2시에 멈춰있죠? 환불 해주세요!"

"제 눈에는 안 멈춰 있는데요! 착한 사람 눈에만 제대로 보이나 봐요!"

"아닌데요. 아무리 봐도 2시에 멈춰 있는데!"

"어라? 선생님, 혹시 저랑 같이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시나요?"


M은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뜬 채로 B를 쳐다봤다. B가 손사래를 치며 멈칫 물러나려던 찰나, M이 B의 셔츠 단추에 손을 가져가 댔다.


"아, 캔버스가 좀 작은 것 같아서요. 좀 넓은 캔버스가 필요한데요. 선생님이 동의하시면 제대로 된 거 하나 그려 드릴게요."


B는 자신의 셔단추를 쥔 M의 손을 저지하듯 감싸 잡았다.


"일단 시계는 고맙고요. 반지도 고마운데요. 그거 아세요? 용 잡아 먹는 새가 있다는 것? 금시조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금시조 사주는 아닌데, 전생이나 전전생이나 뭐 아무튼 그쯤에 새였던 것 같긴 해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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