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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Dec 28. 2020

달큰하고 설레는 초단편 연애소설 쓰기

유자차, 향수, 목도리, 짝사랑, 귀걸이



*작가의 인스타그램(@iam.momo)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받은 소재들을 하나의 초단편 소설로 엮어내는 이벤트성 집필입니다 :-)

**주어진 소재는 '유자차, 향수, 목도리, 짝사랑, 귀걸이'이며 글을 쓰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습니다.



밤이 깊어 인적이 끊긴 골목길에 K가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다. 노란 가로등 빛이 어슴푸레 K의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눈까지 비벼가며 열심히 바닥을 들여다보던 K가 한숨을 내뱉으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K의 맞은편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S가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다 이내 말을 건넸다.


"땅에 뭐 있어요? 아까부터 계속 그러고 계시던데."


예상치 못한 낯선 목소리의 개입에 깜짝 놀란 K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S를 쳐다봤다. S는 훤칠한 키에 허연 얼굴을 하고는 커다란 눈을 가늘게 좁혀 뜨고 있었다. K는 다시 쪼그려 앉아 바닥을 살피며 귀걸이를 찾고 있었노라고 답했다. 근처 술집에서 친구들이랑 한잔 하다가 바람을 쐬러 잠깐 나왔는데, 하필이면 귀걸이가 빠진 것 같다고.


"내가 같이 찾아줄게요. 나 그런 거 잘 찾아."


S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K의 옆에 따라 앉았다. 어둑한 가로등빛이 S의 기다란 속눈썹에 걸려 흰 얼굴에 여린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 큰 어른 둘이 보기에도 우습게 쪼그리고 앉아 몇 분이나 땅을 더듬어대도 귀걸이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런 거 잘 찾아요? 아닌 것 같은데." K가 원피스 자락에 손바닥을 문질러 닦으며 물었다.

"사실 저 시력 안 좋아요. 밤엔 더 안 보여." S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당황한 K가 "네? 근데 왜?"하고 되묻자, S가 말을 이어 나갔다.

"옆 테이블에 있었어요. 같은 술집. 몰랐죠? 그 안에서 한 사람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화장실이라도 가지 않을까, 하고 계속 기다렸어요. 뻔한 대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K가 벙찐 얼굴로 눈만 껌뻑이고 있자, S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K의 목에 감았다. K는 마취총이라도 맞은 짐승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S는 그런 K에게 "귀걸이, 더 찾을까요? 아니면 그냥 좀 걸을까요? 눈 아프지 않아요?"하고 물었다.


한 겨울밤, 술집 앞에서, 처음 만난 성인 남녀 둘의 뜬금 없는 산책. 얇은 원피스에 코트만 대충 걸친 채인 K는 차가워진 손을 비벼가며 어색하게 걸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이 아니라 고장난 로봇처럼 보일 정도로 삐걱삐걱 걸었다. 서로 말도 없이 퍽 난감한 얼굴을 한 채 대로변까지 걸었다. 어두운 골목을 벗어나니 편의점 간판의 하얗고 쨍한 빛이 둘 사이를 파고 들었다.


"어? 편의점이다." S는 K에게 잠시만 기다리라 말하더니 이내 편의점에 들렀다. 그리고는 유자차부터 대추차, 꿀차까지 뜨거운 페트 음료를 종류별로 양손 가득 들고 나와서는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었다. S의 도톰한 입술 끝에서 한 마디쯤 떨어진 양볼에 보조개가 예쁘게 패였다.


"어떤 거 좋아할 지 몰라서요. 일단 종류 별로 샀어요." S는 양손을 K에게 내밀었다.

"어.. 저는 그럼, 유자차요."

K가 유자차를 골라 들자, S는 남은 손에 대추차를 쥐어주었다.

"이건 그냥 따뜻하니까 들고 있어요, 안 마셔도 돼요."


고장난 로봇 같은 K는 어떤 말을 해야할 지 찾지를 못하고 애꿎은 입술만 앞니로 물어 뜯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K의 코트 안에서 휴대폰이 웅웅 울어대는 소리가 났다. 잠깐 바람 쐬러 간다던 친구가 영 돌아오질 않으니 걱정이 되어 걸려온 전화일 테다.


S는 여전히 양 볼에 보조개가 패이도록 미소를 지으며 K에게 물었다.

"지금, 가야 하죠? 우리 다음에도 볼 수 있어요?"

K는 S의 보조개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푸흐흐,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K는 S에게 장난스레 눈을 흘기며 "아무한테나 이러시는 건 아니길 바라요!"하고 쏘아 붙였다. 그리곤 가방에서 작은 책 한 권과 펜을 꺼내 들었다. 책 표지에는 '짝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K는 책의 겉표지를 넘기고 드러난 첫 페이지에 펜으로 무언가를 날려 썼다. 


"저는 작가예요. 이건 제가 쓴 책이고, 여기 적은 건 제 연락처. 다음에 또 봐요, 우리." K가 S에게 책을 건넸다.

"어, 그럼 책 값으로 다음에 맛있는 거 사게 해주세요."


K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술집으로 이동했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K의 휴대폰이 또 '우웅'하고 한번 울렸다. 낯선 번호로 온 문자 메세지였다.


[ 책에서 작가님 향수 냄새가 나요. 다 읽고, 독후감상문 제출할게요. 다음에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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