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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Oct 02. 2020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더라고요

책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책을 좋아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어머니는 꽤 큰 규모의 국가고시 전문서점을 운영하셨고, 덕분에 각지고 두꺼운 책도 겁 없이 가지고 놀았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일반 서점에 방문해 책도 한 권씩 꼭 샀다. 엄마는 책을 골라주는 법이 없으셨다. 내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고 섰다가, 내가 한 권을 품에 안고 오면 말 없이 계산해주셨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일주일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중학생 때는 꼭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작가가 되리라 마음 먹었었다. 혹여 삶의 무게에 눌려 정규직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오거든, 기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나는 늘상, 글을 써서 밥을 먹는 사람이고 싶었다. 얼떨결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두 꿈을 모두 이루긴 했으니 다행이런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 그런지, 내가 만났던 남자친구들도 모두 책을 좋아했고, 글을 잘 썼다. 나는 첫 번째 남자친구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책을 한 권 빌려달라 했었다. 그때 빌렸던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였다. 당시 나는 아이돌 활동을 할 때였고, 빌린 책을 내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바람에 멤버 중 한 명이 책을 말 그대로 '냄비받침'으로 썼다가 표지를 눌어 먹었다. 나는 같은 책을 새로 한 권 사서 돌려주었다. 공중그네와 함께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도 한 권 사서 같이 건넸다. 일종의 고백이었다. 키친을 읽고 나서 연애가 하고 싶지 않다면, 그건 필시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리라 생각했으니까.

두 번째 남자친구이자 현재로서는 내 마지막 남자친구는 내게 이병률 시인의 에세이를 자주 선물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병률 시인의 책은 한두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 남자친구한테 받은 거다. 그는 노희경 작가의 책도 꼭 읽어 보라며 선물했다. 그래서일까, 이병률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괜히 예뻤던 그 얼굴이 자꾸 선하다. 이제는 그냥 그가 적당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 전에는 그가 나보다 행복하길 빌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조차 미련이어서. 나와 관계 없이 나름의 행복을 잘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적당히, 그렇게.

앞으로도 책으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나 역시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참이다. 이제는 어엿한 내 책도 나왔으니 내가 쓴 책으로 기억되는 편이 좋으려나. 새로운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 하나쯤 품에 안겨주고 싶은 호기로운 생각도 든다.

그냥, 오랜만에 노희경 작가님 책을 읽다가 뭐라도 기록해두고 싶어서. 응, 그냥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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