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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Oct 29. 2020

Digital Love


얼마 전 한 패션잡지에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 리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는 꽤나 보수적인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아니, 진짜 데이팅 앱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보정 효과를 먹였는지도 모를 셀카 몇 장과 수십 번도 고쳐 쓸 수 있는 텍스트 몇 줄만으로 상대방에게 호감이 생길 수 있다니,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찾아보고, 물어봤다. 다른 사람들은 데이팅 앱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실제로 데이팅 앱을 통해 연애를 시작한 적이 있는지. 



놀랍게도 2019년 국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지출을 가장 많이 한 앱 10개 중 3개가 데이팅 앱이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소비자들이 데이팅 앱에 지출한 금액은 22억 달러(한화 약 2조 6000억 원)나 된다고 한다. 국내 데이팅 앱 시장만 해도 규모가 수천억 원 수준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나만 빼고 다 관심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세상은 저 앞을 내달리는 풍경을 목도한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야말로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나 아직 어린데!) 그래도 '내 주변에서는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사례를 못 본 것 같다'는 마지막 오기를 부리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팔로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데이팅 앱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지'와 '실제로 만난 적 없이 온라인으로만 교류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를 물었고, 데이팅 앱 시장 규모보다 더욱 놀랍게도! 두 가지 질문 모두 'YES'라 답한 이의 비율이 'NO'라고 답한 이보다 근소하게나마 높았다. 심지어, 나랑 꽤 가깝게 지내던 지인 커플이 알고 보니 데이팅 앱으로 만나게 된 사이였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알게 됐다. 이제는 정말, '디지털 러브(Digital love)'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됐구나.



그래서 나도 큰 마음을 먹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시대에 뒤쳐지고 싶지 않은 조급함 조금과, 어쩌면 상상도 못한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기대 아주 조금과, 결과가 어떻든 그런대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식 마인드를 왕창 담아서.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나 데이팅 앱 써볼 거야!"하고 말하니, "그게 그렇게 기합까지 넣을 일이야?"하며 웃었다. 우선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앱마다 이용자층과 컨셉이 다르다고 하니, 어떤 앱을 써야 하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한 것. 데이팅 앱을 써본 적 있다고 답한 지인들에게 조언까지 챙겨 들었다. '사진은 너무 믿지 말고, 상대방이 나 외에도 여러 명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기본 전제로 하고, 유료 결제는 가능하면 자제하라!'



그런데 데이팅 앱을 사용해보겠노라고 '거룩한' 선언을 한 지 2주가 지나도록 가입은커녕 아직 앱 설치조차 못하고 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이제 슬슬 시도해볼까' 싶은 마음에 앱 마켓을 열기는 했는데 막상 데이팅 앱을 설치하려고 하니 자꾸 망설여졌다.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그냥 내키질 않았다. '설치'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몇 번쯤 반복하다 보니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스마트폰을 저기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 좋아하는 밴드인 오아시스의 'wonder wall'를 아무렇게나 흥얼거렸다. "Because maybe,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And after all, you're my wonderwall. (왜냐하면 아마도 너는 나를 구할 사람이 될 테니까. 결국, 너는 내 구원자니까.)"



아,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그렇네! 나는, 실제로 만나기는커녕 얼굴조차 모르는 뮤지션의 음악을 듣거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간혹 그들에게 홀딱 반해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서로의 생김새가 어떤지는 알고, 서로  대화도 나눠본 '디지털 러브'가 어쩌면 더 현실적인 사랑의 갈래일지도 모르겠는 걸. 사랑에 있어 보수적이라는 말은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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