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어떤 이를 사랑하고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우리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척도가 있을까. 있다면 그건 또 무엇일까. 사실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겠노라고 마음을 먹기 전까지는 '사랑의 인식'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언제 사랑을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사랑을 인식하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역시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또 물어봤다. '여러분은 언제 스스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인식하시나요?'하는 질문을 주변인들에게 던졌고, 답변이 이어졌다. 이를테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달려갈 수 있을 때, 밤에 너무 졸려 눈이 감겨도 억지로 눈을 떠가며 카톡 답장을 보내고 있을 때,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냥 자꾸 연락을 하고 싶을 때, 그 사람 앞에서는 나답지 않은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등등. 답변들을 가만히 읽고 있으니, 저마다 사랑을 인식하는 기준 같은 걸 가지고 있구나 싶어 새삼 놀라웠다. 이런 멋진 사람들!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나도 기준을 찾았다. 내 경우에는, 좋아하는 것을 나눠주고 싶을 때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그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얼마 전에 동네 와인바에 간 적이 있는데, 인테리어가 너무 멋졌고 마침 흘러나오는 음악도 너무 적절했다. 나도 모르게 '아, 그 사람이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했고, '어? 나 그 사람을 좋아하나?' 싶어 괜히 혼자 당황했더랬다.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은 측은지심으로 자각하는 편. 일이 바빠 하루종일 밥을 먹지 못했다든가, 멍 때리며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에 상처가 났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그냥 흘려 들을 수 없을 때 내가 상대방에게 조금은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상대의 불행이 걱정되고 신경 쓰인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존재를 언제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방향성과 진행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랑의 인식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는 아주 둔한 편이어서 이미 허리까지 물에 잠기고 나서야 '아, 내가 물에 들어와 있구나!'하고 느끼는 편이므로 할 말이 없지만.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역시 물에 발을 담글 때부터 노선을 정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거대한 파도가 밀려 오면 어쩔 도리 없이 머리 끝까지 물에 잠기고 말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