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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Oct 29. 2020

짝사랑도 사랑이니까요.


다소 논점을 흐리며 시작하자면, 나는 ‘짝사랑’이라는 단어가 ‘짝사랑’인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짝’이라 하면 보통 한 쌍을 일컫는데 혼자 하는 사랑이 왜 짝사랑인가. 나의 불만은 일단 차치하고 짝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글쎄, 나는 모든 사랑이 짝사랑으로 시작해 짝사랑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정말 기적처럼 나와 상대가 한날 한순간에 서로에게 반해 사랑을 시작했다가, 또 기적처럼 한날 한시에 서로에 대한 마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처음도 끝도 누군가의 짝사랑으로 남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짝사랑 중이라 해서 주눅이 들 필요도, 자기 연민에 빠질 필요도 없다는 말이지. 다만, 자신이 품은 짝사랑을 어떻게 키워나갈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조금 필요하겠다. 본인의 마음이 다할 때까지 정말 짝사랑으로서만 그 마음을 지켜나갈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대에게 그 사실을 알려 결과를 보고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



혼자만 사랑을 품는 것의 장점은, 너무 당연하게도 상대방의 거절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입을 일이 없다는 것일 터. 혼자 열렬히 상대방을 그리다가, 마음의 열기가 식는 날 고이 놓아주면 될 일이다. 다만,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품은 마음의 온도가 너무 높아지는 날에는 마음이 몸을 태워버릴 수도 있겠다. 뜨거운 음식이야 입에 넣었다가도 ‘앗뜨!’하며 뱉어낼 수 있겠지만, 뜨거운 마음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속을 까맣게 태우고야 말겠지.



반대로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알려 결과를 보고야 마는 것은,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은 일은 없겠지만 마음이 베여 그 피를 멈출 때까지 한참이 걸릴 수도 있겠다. 물론, 상대도 나를 마찬가지로 사랑해준다면야 그런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냐만, 그렇지 아니할 경우에는 마음에 자상을 제대로 입고 울컥울컥 쏟아져 내리는 피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용을 써야겠지. 늘 그렇듯이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낫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당장 베인 상처만 눈에 들어오겠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본인이 정할 일이다. 나는 다만, 당신이 어느 길을 걷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했던 기억으로 행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고, 사랑할 기대로 충만하게, 누굴 사랑하든 그렇게 짝사랑을 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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