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모니카 Oct 29. 2020

혼자를 보내는 시간


나의 지난 사람은 나를 남겨두고 떠나며 그런 말을 했더랬다. "앞으로 지독히도 외롭고 서러울 날들이 너를 기다릴 거야." 못돼 먹은 저주 같은 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잘 지켜 나가라는 당부 같은 거였겠지. 그런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일을 이별 직후 겪었다. 헤어지고 난 뒤, 마침 보고 싶던 영화가 개봉을 했고 당당하게 혼영을 하겠다며 커플들 사이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뒤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화관을 빠져 나가려는데, '나 투명인간인가?'싶을 정도로 커플들에게 새치기를 당했지 뭐야. 몇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나서, 결국 9층에서부터 비상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나만 당당하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어이 없게도 깨닫는 순간. 누구의 말처럼 지독하게도 외롭고 서러울 날들이 나를 기다리겠거니 싶어 허탈한 웃음이 조금 났더랬다.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의 무릎에 기대어 울음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다시 그 울음을 주섬주섬 주워 주머니에 얼른 쑤셔 넣었었다. 그래야 다음에도 무릎 정도는 내어줄까 싶은 마음에. 그렇게 혼자를 보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은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또 때때로는 여행을 떠나는 것까지 꽤 익숙해졌는데- 문득 전화를 걸고 싶은데 손가락이 가는 번호가 없다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질 않는다. 내 전화번호만 괜히 한번 눌렀다가 이내 삭제한다. 갈곳 잃은 손가락은 애먼 인스타그램 뉴스피드만 올렸다 내렸다 한다. 남들도 다 이렇게 혼자가 되어 사나 싶다. 전화를 걸 곳이 없다는 사실에도 익숙해지고 나면, 그러면, 나는 정말로 혼자가 되는 걸까. 그건 좋은 일일까, 가여운 일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도 '취향 저격'이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