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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Oct 29. 2020

지난 사랑을 놓는 법


사랑이 끝나고 나면 후유증을 상당히 앓는 편이다. 이별 후에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프고를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이별 후에 유독 앓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바로 그 편에 속하는데, 아, 진짜 죽을 맛이다. 밥은 커녕 물도 겨우 넘겼다. 지독한 불면증이 시작돼 매일 밤 내 방 천장의 벽지 무늬를 눈으로 얼마나 따라 그렸는지. 그래서 마지막 이별 후에는 다시는 사랑 같은 거 하지 않겠노라고 비장한 선언까지 했더랬다. 그래서 지금 내가 아직까지도 이별의 상처를 부여잡고 처절하게 바닥을 긁고 있느냐 물으면, '아니오'다.



수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을 때, 나는 길을 걷다가도,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혼자 쇼핑을 하다가도 뚝뚝 눈물을 흘렸다. 흔한 표현 중 하나로 '고장난 수도꼭지'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딱 어울리는 꼴이었다. 아무런 전조 증상이 없이 그냥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면 나는 당황해선 손등으로 눈가를 쓱쓱 닦아내곤 했다. 평소에도 이랬으니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얼마나 울었는지는 말해 뭐하겠는가. 당시에는 이런 슬픔과 아픔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혼자 외롭게 늙어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별로부터 1년 반쯤이 지난 지금, 나는 너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지금도 라면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끓여 먹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물론 가끔 전 남자친구의 SNS를 염탐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과 달리 그 사람이 그저 잘 지내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 최근에는 다시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람도 생겼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 아직 사랑이라기엔 이르지만, 그 비슷한 것을 새로 시작하게 된 것도 같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뭘 더 했느냐고 물으면 글쎄다. 그저 이별을 충분히 기렸다. 연애를 할 때에는 사랑할 수 있는 만큼 모두 털어 사랑했다. 먼저 마음이 식은 상대방이 날 떠나겠노라 말했을 때에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울며 매달렸다. 결국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낸 뒤에도 내가 아파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아팠고, 최선을 다해 지난 사랑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일년이 좀 넘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문득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불교 용어 중에 '돈오'라는 것이 있다. 차츰 차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닌,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것을 뜻한다. 내 이별의 통증도 어느 날, 갑자기 잠잠해졌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내가 지난 사랑을 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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