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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Oct 06. 2024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 통과, Now what?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소중함

7월 말 변호사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발표되기 까지의 세 달은 그 동안 못 놀았던 한을 푸는 데 집중했다. 주말마다 가족과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저녁에는 영화를 보며 지내는데 시험결과 발표일이 다가올 수록 가슴이 답답해 지는 느낌이 강해졌다.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 소견에 따르면, 아닌 척 했어도 나는 결과에 대한 초조함이 상당했던 듯 하다.


“엄마, 저 너무 긴장되서 확인버튼을 못 누르겠어요.”


나의 고단한 로스쿨 시절과 치열한 시험 준비기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던, 이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은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떨려서 합격 여부가 표시될 캘리포니아 변호사 협회 웹사이트의 확인 버튼을 클릭하기는 커녕 컴퓨터 모니터도 선뜻 응시하지 못했었다. 


“어디 보자…. 엄마 합격이다!”


컴퓨터 자리를 넘겨받아 시험결과를 확인한 나의 말에 눈을 질끈 감고 기다리고 있었던 아들은 환호를 지르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색종이 조각을 내 머리 위에 날려주었고 즐거움에 못이겨 한동안 막춤을 추었다. 실없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 공유했던 꿈의 성취가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 뭉클해졌다. 그날 밤,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동안 소흘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으며 내 생애 오래도록 기억될 즐거운 밤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뭘 하면 되지?’


오랜 고생 끝의 성취를 자축하며 마신 와인의 취기가 가시고 날이 밝자 Now what?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커리어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던 로스쿨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시작했었고, 하다보니 끝은 봐야 겠다는 생각에 변호사 시험까지 치르게 된 것인데, 막상 시험을 통과하고 나니 더 이상 가야 할 정해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대입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다가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주변 어른들의 조언대로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거쳐 좋은 배우자를 만나 예쁜 아이 둘 정도를 낳고 난 성인처럼 그렇게 나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 


법과 제도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타인을 대변하는 변호사는 로스쿨에서 지식을 배우고 해당 지식을 실무에서 적용하며 익혀 학습(學習)을 완성한다. 고객의 상황은 매번 다르고 법 역시 계속 변하기 때문에 변호사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지난 5년 여의 시간 동안 공부만 해왔던 터라 나에게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인식된 로펌 생활은 거쳐야 할 길인 건 인정하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 선택지였다. 그렇게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주저하는 동안 몸담고 있던 대기업에서는 변호사 자격증 취득을 고려해 매니저로 승진시켜 주었고, 나는 대기업 법무팀 일원으로서의 안정감과 편안함에 젖어들어 갔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으며 날씬해지고 싶은 상충된 욕망처럼,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능력있는 변호사로 인정받고 싶다는 불가능한 바램이 마음 한 켠엔 늘 자리잡고 있었다. 로스쿨을 시작했다며 나에게 학습방법 조언을 구했던 후배가 OCI를 통해 대형 로펌의 인턴 오퍼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 함께 공부했던 로스쿨 친구가 힘든 로펌 생활을 견뎌내고 기술기업의 법무팀 변호사로 이직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나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나의 변호사 자격증이 안쓰러웠다. 


물론 로스쿨에서 배운 지식이 법 관련 뉴스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로스쿨에서 배운 스킬이 토론에 재미를 붙인 아이의 디베이트 대회에 판사 역할로 자원봉사하며 유용하게 쓰이기는 하지만, 그러려고 그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투자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인생계획에 없었던 변호사가 된 나의 여정을 되짚어 보며 깨달았다. 나의 모험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변호사 자격증 취득은 단지 분기점이었을 뿐,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훌륭한 변호사로 거듭나는 것이 내가 선택했고 계속해 나갈 모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나와 재회하고 미래의 나와 소통하는 일이 글쓰기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첫 경험은 늘 설레인다. 그러니 할까 말까 고민되는 낯선 경험은 일단 하고 보자. 십여 년 몸담은 곳을 떠나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겠지만 Why not?이라는 생각으로 일단 행동해 보자. 정해진 기한은 오늘을 특별하게 만드는 법이니 내가 로스쿨을 졸업할 때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2025년 8월을 변호사로서의 뿌리를 내리는 기점으로 삼자. 새로운 조직에 대한 두려움은 나의 무지를 먹고 자랄테니 네트워킹 이벤트에 적극 참여해 다양한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을 많이 만나보자. 그들은 나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나는 그들을 통해 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테고 그렇게 공유된 경험과 인연은 평범한 지금의 나보다 한층 더 성장해 있을 내 미래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다. “나 답다”는 말이 그 무엇보다 가슴벅찬 칭찬으로 들릴 수 있게끔 나는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훌륭한 변호사가 되는 길을 완주해 보고자 한다. 그 길에 쉼표는 있겠지만 마침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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