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Oct 06. 2024

변호사 시험(Bar Exam)이라는 심리게임

완벽보다 완급조절을 통한 완주를 위하여

살아 오면서 ‘이건 해도 안되겠는데’ 싶은 상황이 별로 없었다. 항상 내 능력을 다 쥐어짜내지 않아도 성취 가능한 일 만을 알게 모르게 선택해 왔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때도 성적에 맞춰 학교와 학과를 선택했고, IMF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같은 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해 버렸다. 기자 시험이 어렵다고들 해서 아예 지원서도 제출해 보지 않았고, 대기업 취업은 제대로 된 토익점수 하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참여한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공채가 아닌 특채 입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일단 공부해야 할 과목 수가 총 십여 개에 이르렀고, 각 과목마다 외워야 할 이슈와 법조문은 수도 없이 많았다. 심지어는 로스쿨 수업에서 배운 적도 없는 내용이 기출문제라며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멀리 보며 지레 걱정할 시간에 바로 눈 앞의 관문에만 집중하자는 나의 로스쿨 신조에 따라 나는 변호사 시험결과 보다는 일단 시험장에 앉아서 끝까지 시험을 치루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은 첫날 에세이 5개와 법률서면 1건을 총 6시간 반에 걸쳐 작성해야 하고, 두 번째 날에는 총 200개의 객관식 문제를 6시간에 걸쳐 풀어야 한다.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약 40-50%. 한국 사법고시에 비하면 아주 쉬운 편이지만, 현지인에게도 그다지 만만한 시험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로스쿨 학생들은 5월 말에 졸업하며 법학 학위를 취득한 뒤, 약 2달 간의 집중적인 공부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다. 회사에 두 달 간의 휴직계를 낸 나는 첫 한 달 동안 의욕에 불타올라 각 과목 마다의 완전정복을 꿈꾸며 하루 12시간 이상씩 공부에 매진했지만, 한 달이 훌쩍 지나 시험까지 약 3주 남짓 남은 시점에는 시험 과목의  절반도 채 다 검토하지 못하여 그만 패닉에 빠져 버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객관식 문제 약 2천개 정도랑 과목별로 에세이 몇 개만 써보면 돼.”


막막한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마다 나보다 한 학기 먼저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패스한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들은 이렇게 답해주었다. 이들과 함께 시험을 보았지만 탈락했던 C가 재시험을 볼 시험장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일부러 가까운 곳을 두고 먼 시험장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변호사 시험을 앞둔 마지막 3주의 기간은 고3 시절을 방불케 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메모장에 써놓은 법조항을 되뇌었고, 도서관으로의 출퇴근 운전시간 동안에는 녹음된 강의를 들었으며, 매일매일을 시험날처럼 오전에는 객관식 문제 100개를 풀고 오후에는 에세이 3개를 작성해 나갔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는 그 날 틀린 문제와 답안지 샘플을 검토하며 복습과 암기를 계속했다. 멀미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계획이며 진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고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라는 끊임없는 의구심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완벽보다는 완급조절을 통한 완주가 핵심이라고 되뇌이며 심리게임에서 지지 않고자 안간힘을 썼다. 


매일 시험장과 비슷한 빈 강의실을 찾아가 실제 시험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모의고사를 보았고, 자주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모닝커피를 끊었으며,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있을 체력을 만들기 위해 하루 한 시간의 운동루틴을 부단히 지켜나갔다. 그 루틴은 마치 롤러 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나의 심리를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게끔 다잡아 해주었다.


정해진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고, 첫날 5개의 에세이와 직무시험(Performance Test)을 치르고 난 저녁, 시험 중에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이슈와 욕심만큼 작성하지 못한 에세이 답안지가 눈 앞에 아른거려 도통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맞이한 시험 2일차에는 멍한 머리로 하루 종일 200개의 객관식 문제를 풀어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긴장한 수험생은 온 몸의 힘을 다해 OMR 카드를 연필로 마킹하는 바람에 내 책상까지 마구 흔들려 매우 거슬렸지만, 뭐라고 주의를 주기에는 나 역시 너무도 긴장해 있었다. 


그렇게 이틀 간의 외롭고 긴 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나의 로스쿨 라이프 4년과 10주 간의 변호사 시험 준비는 막을 내렸다. 시험장을 나서는 내 마음은 왜인지 시원섭섭하기 보다는 허탈에 가까웠다.

이전 09화 학내 로펌 인터뷰(OC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