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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Oct 06. 2024

글을 마치며

삶이 담긴 글은 힘이 세다

로스쿨 1학년 생활을 시작한 지 2주 남짓 지난 저녁, 한국에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스마트폰 너머의 아버지는 요양병원 병상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가쁜 숨을 쉬고 계셨고 전화를 걸기 위해 서둘러 눈물자국을 닦아낸 듯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곧 집중치료실로 옮겨가실 텐데 잠시 아버지를 보러 한국에 올 수 있는지 물으셨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임을 감지한 나는 다음 날 오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상된 이별 역시 힘들긴 매한가지다. 일이년 전부터 폐 기능이 많이 떨어지신 탓에 아버지는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셨고 숨쉬는 것 외의 다른 일에 조금만 신경을 쓰게되면 여지없이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힘들어 하셨다. 침상을 매여 매 순간 호흡만을 걱정해야 했던 아버지는 점점 말라갔고 그만큼 예민해지셨다. 몸과 정신의 노화를 막을 수 없다면 어느 쪽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게 행복할까라는 가상의 질문에 대해 줄곧 나는 정신이 끝까지 맑은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자부해 왔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몸 속에 갇힌 맑은 정신도 당사자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고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아버지를 보며 하게 되었다.


더욱 괴로운 건 옆에 있는 가족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몸도 정신도 야위어가는 아버지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느끼기가 조금씩 버거워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인생을 문장에 담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 왔던 40대 이후의 아버지뿐 아니라, 내가 알지 못했던 귀여운 어린 시절의, 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청년 시절의, 하나 둘 늘어가는 가족을 건사해 내려는 새내기 가장 시절의 아버지 모습도 함께. 40여 년 넘게 아버지가 써 오신 일기를 읽으며,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아버지를 아는 이들의 추억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은 오롯이 에세이 포토북에 담겨 아버지의 빈자리로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어느 토요일 아침, 밤새 도착한 카톡을 확인하던 나는 동생의 믿을 수 없는 메시지에 짧은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언니, 형부가 돌아가셨어. 어떡해..” 


내가 고3이던 시절 딸만 다섯인 우리집의 둘째 사위가 되어 “외롭게 자랐는데 처제가 많이 생겼다”며 좋아하셨던, 그 누구보다도 운동을 즐기셔서 건장한 몸을 가지셨던, 이제 막 50줄에 들어섰던 농담 잘하고 유쾌한 형부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은 그를 아는 모든 이에게 충격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별로 주체할 수 없었던 슬픔은 그렇게 다시 글로 태어났다. 그를 사랑했던 가족 한 명 한 명이 그와의 추억을 기리는 글을 보내왔고, 그 글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남편으로, 아빠로, 사위로, 형부로, 형님 또는 동서로 수많은 역할을 정성껏 수행해 온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삶이 담긴 글의 힘을 느낀다. 아버지와 형부의 인생이 문장에 담길 때마다 나의 상실감과 허무함은 조금씩 사그라 들었고 그 자리에 사랑과 감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이 깊은 만큼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애정이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운명에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여정을 문장에 담으면서는 과거의 내가 무엇을 북극성 삼아 걸어왔는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 친근해진 나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며 나만의 나침반을 손에 들고 오늘도 미래의 나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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