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타인 2

자존심보다 관심

by 나는

생일이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기에 시작되는 새해와는 달리, 나만의 새 해가 다가온다. 지금까지는 귀찮다는 이유로 생일을 특별히 기념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지인들의 갑작스런 부고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건 사고를 목격하면서, 한 해를 무탈하게 살아 낸 지난 시간에 감사하고 다가 올 한 해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재미난 추억을 한 겹 더 쌓고 싶어졌다.


사실 "생일같은 건 뭐~" 하며 쿨한 척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던 과거에도 저녁이 되면 괜시리 하루 종일 조용한 카톡창을 보거나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듯 행동하는 가족들에게 괜시리 서운해져 심통을 부리곤 했다. 머리로는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뭐 좋다고, 서로 안 주고 안 받으면 편하고 좋지" 라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외로웠던 게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고 싶고, 그 특별한 인연이 가능했던 내 생의 첫 날을 뜻깊게 기념하고 싶었던 거다.


전 직장에서는 사무실 살림을 맡아 운영해주시는 분께서 팀원 생일 즈음에 케익을 준비해 주셔서 주간회의 시작 전에 간단히 축하해 주는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직장에서는 생일을 챙기는 문화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때마침 며칠 전 코스트코에서 사 온 카스테라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 어느 생일 케이크에 장식되어 있었던 "Happy Birthday" 라는 글씨의 플라스틱 미니 팻말 장식도 서랍에서 찾아냈다. 이걸로 모든 준비 완료.


드디어 직장인들의 가장 중요한 일과인 점심시간. 플라스틱 미니 팻말 장식을 내 유리컵에 테이프로 붙이고 카스테라를 다른 한 손에 들고, 속으로는 살짝 민망함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씩씩한 척 카페테리아로 내려갔다. 함께 일하는 7명의 동료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내 컵에 붙은 Happy Birthday 장식을 누군가 눈치채고 먼저 물어봐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음식을 먹느라 바빴고 옆 자리 동료만이 카스테라를 흘낏 쳐다봤을 뿐, 아무도 나에게 이걸 왜 가져왔는지 묻지 않았다. 그렇다면 또 셀프 서비스.


"저, 이번 일요일이 제 생일이라서 함께 먹으려고 카스테라 가져왔어요. 미리 생일 축하 해주세요." 같은 테이블 동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하나 둘 다정한 생일축하 인사가 전해졌다. 한 분은 이렇게 자기 생일을 자축하는 분을 처음 본다고 특이하시네요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게요 저도 처음 해 보는데 재밌네요 라고 대꾸했다. 진심으로 즐거웠다.


사실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신 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농담도 곁들이고 싶었으나 아직 나의 뻔뻔지수가 거기에 까지 이르지는 못했나 보다. 그래도 성공이다. 예전같으면 생각만 하고 넘겼을 아이디어를 기어이 실천했으니까. 그리고 내 생일을 축하해 달라는 말을 얼굴이 빨개지지 않은 채로 태연한 척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시덥잖은 자존심을 가볍게 떨쳐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40대 마지막 생일을 기억할 만한 작은 추억이 하나 만들어 졌다.


다가오는 나만의 새 해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마음속에 불현듯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고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더 이상 재지 않고 행동에 옮길 날들로 가득할 그 한 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자는 내 작지만 단단한 결심이 내년 이맘때 즈음 나를 어떻게 바꿔놓았을지, 내 삶의 지평을 얼마나 넓혀 주었을지, 얼마나 많은 다정한 타인을 만나게 해 주었을지, 일 년 뒤의 내 삶이 궁금해진다. 머리로 계산해 대는 자존심보다 마음이 끌리는 관심을 따라 그렇게 미래의 나를 만나러 간다.


#라라크루 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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