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경험주의자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넘어서

by 나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조만간 열릴 한 마라톤 대회에서 하프 마라톤을 신청한 러닝크루 멤버들을 위해 행사가 열릴 지역으로 원정을 가 미리 코스를 익히며 달리기 훈련을 할 계획이라는 공지가 러닝그룹 카톡방에 떴을 때 든 생각이다. 지난 해 11월 중반부터 지금까지 주말 이틀 동안이긴 해도 꾸준히 아침마다 달리기를 해 왔지만 한 번에 달려 본 최장거리는 16 킬로미터. 거기에 5 킬로미터를 더 뛰어야 하프 마라톤 거리가 되는데, 마지막 한 발자국이 얼마나 무거운 지를 살짝 경험해 본 나로서는 추가 5 킬로미터라는 거리가 주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안되면 걷지 뭐.'

참석여부를 표시하는 창에서 참가 버튼을 누르며 한 생각이다. 사람의 뇌는 너무나 영리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그 결정이 올바른 이유를 끊임없이 생각해 낸다. 불참 버튼을 눌렀더라면 그 불참이 너무나 당연한 합리적 결론이라는 이유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너무 오래 뛰면 중력 때문에 얼굴 피부가 처져서 더 늙어보일 거야. 아직 달리는 속도도 빠르지 않은데 괜히 늦게 달리면 같이 뛰는 사람들에게 민폐고, 길이라도 잃으면 곤란해. 어쩌면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올 수도 있어. 괜히 지루한 도전을 겁없이 했다가 달리기 자체에 관심을 잃게 될 지도 몰라 등등.


'혹시 알아? 생각보다 쉬울지.'

그랬다. 지금까지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하기로 했던 일 중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던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지레 짐작으로 스스로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아 놓치고 지나간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만 그 길을 선택해 보지 못한 나만이 놓친 기회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 알아챘다 하더라도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의 포도는 신맛만 가득할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여우처럼 비선택의 합리화를 꽤 잘 해왔을 터였다.


그런 생각 끝에 주저없이 참가 버튼을 눌렀다. 얼굴 피부? 음.. 선크림 잘 바르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달리지 뭐. 내 속도가 너무 늦다 싶으면 뒤따라 오는 멤버들에게 먼저 가시라고 길 비켜드리면 되고.. 길을 잃으면 휴대폰으로 구글지도 검색하면 되지 않겠어? 정 안되면 우버타지 뭐. 무릎 관절이 아파온다 싶으면 그냥 걸으면 되고, 지루하면 휴대폰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 들으면 되지. 혹시 알아? 예상 외로 무난히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럽겠어. 흠..이건 안하면 손해인 일인 걸.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에는 부지런히 그 선택이 합리적인 이유가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랐고, 드디어 밝아 온 하프 마라톤 훈련일에는 무사히 21.75 km를 뛸 수 있었다. 뿌듯했다. 스트라바 앱에 찍힌 달린 거리 숫자도 만족스러웠지만, 그에 못지않은 즐거움은 함께 하는 사람들로 부터 왔다. 카풀을 해서 마라톤 경기가 열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나눴던 크루 멤버들과의 담소, 꽤 긴 거리를 함께 달리며 서로를 은근히 챙겨주던 다정한 느낌, 맑은 하늘 아래 탁 트인 넓고 아름다운 포도밭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느낀 일상에서의 해방감,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에 마신 따뜻한 라떼의 감미로움.


'내가 할 수 있을까'는 잘못된 질문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가'가 올바른 질문이다. 하고 싶다면 그걸로 끝. 하고 싶은 데 해낼 수 없을까봐 지레 포기하는 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핑계일 뿐. 한 때 그 무리 중 핵심 멤버였던 나는, 그리고 이제 그 무리에서 벗어나 어설픈 경험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첫 질문부터 바로 잡아본다. 완벽주의자가 좋아보이긴 해도 그건 그냥 게으른 걸 감추기 위한 변명이었다는 것을, 어설픈게 좀 우스워보일 지는 몰라도 경험주의자에게만 보이는 멋진 신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116쪽, 데미안, 민음사)


글벗이 공유해 온 오늘의 샛길독서 문구가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여러 모습의 나에게 어설픈 경험주의자로서의 싹이 돋아날 수 있도록 기회의 물을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잘하는 게 아니니까, 나랑은 안맞을 것 같으니까 라는 손쉬운 합리화 대신, 이런 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는 이걸 좋아하는 것일 테고 그 누군가가 나일 수도 있지 않겠어 라는 호기심으로 일단 해 보고, 좀 익숙해져 보고, 진짜 좋아하는지를 몸으로 느껴볼 기회를 가져 보고자 한다. 그 기회가 정말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는 어설펐지만 경험하기로 했던 미래의 나만이 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설레임을 한 스푼 곁들인 선물을 건네 본다. 이거, 한 번 해보지 않을래? 정답은 YES야.


# 라라크루 14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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