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수소리를 들어줘
비자발적 무소속으로 3개월을 살아보며 깨달았다. 난 사람으로 부터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구나. 예전부터 눈치채긴 했었다.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 왔으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를 비롯한 타인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해질 즈음엔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듯 타인의 시선에 대한 속박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질 못했다. 오히려 타인이 가리키는 방향이 없으면 막막했다. 어디를 향해 나의 에너지를 쏟아야 할 지 모르겠고 그 결과 역시 오롯이 내 책임이 되어 버리니까.
한 때는 그런 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여다 보고 그걸 위해 살아보자고. 하지만 깊게 생각할 수록 알 수 없었다. 과연 어디까지가 나의 본성이 원하는 것이고 어디부터가 외부에서 주입된 목표와 꿈인 걸까. 이젠 입에 올리기도 지겨울 정도인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라는 말을 들은 한 지인의 대답이 통쾌했다. "지금까지 없었으면 없는 거예요". 아, 이렇게 명쾌할 수가. 이런 유쾌한 촌철살인마 같으니. 단, 이 친구에 대한 오해는 금물. 겉과 속이 동일하고 계산없이 솔직한 말을 해 주는 사람을 친구로 둘 수 있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의 말이 의외로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없었으니 아무거나 하면 되겠네. 이왕이면 해서 내 마음이 충만해지는 걸로 골라 잡으면 되겠네. 그게 뭔지 아직 모르니까 닥치는 대로 하면 되겠네. 맞춰야 할 틀이 없다는 건, 따라가야 할 길이 없다는 건 막막한 느낌의 포장지로 둘러싸인 무한한 자유라는 선물이었다. 포장치를 풀러볼 생각을 안했을 때에만 부담스러웠던.
한 때 답정너라는 신조어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유행한 적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로, 타인의 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답을 유도해 내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타인에게는 무례한 일이겠지만 내가 나의 답정너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오늘 하루의 모습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본 뒤 오늘의 나에게 생각했던 말을 내뱉고 계획했던 일을 그저 행하게끔 종용하는 것. 내가 미리 써 놓은 대본의 주연 역할을 맡을 나는 대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토달지 않고 대본작가의 큰 그림을 믿으며 그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 보기. 때론 나의 연기력이 부족해서 대사를 잊을 수도, 상대측 배역의 돌발 행동으로 상황전개가 극본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돌아보며 미소지을 재미난 추억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출근길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로 위에서 머릿속으로 조용히 오늘의 대본을 써 본다. 그리고 그 대본을 나에게 건네 본다. 대본대로 하되 상대측 배역과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조금의 애드립은 해도 좋다고, 나라는 배우에게 무한한 신뢰와 자유를 담은 윙크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오늘의 막이 내리면 그 누구보다도 큰 박수를 나에게 보낼 것이다. 나를 믿고 내 대본을 소화해 준 신인배우의 열연을 격하게 환호하면서.
#라라크루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