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이라는 역발상의 재미
나는 숫자보다 글자를 좋아한다. 수식을 증명해야 하는 수학문제 답안지 앞에서는 한숨부터 나오지만 글감에 대한 글을 채워야 하는 백지를 보면 마음이 설레는 어쩔 수 없는 문과 성향. 고등학교에서 이과와 문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을 때, 학교 선생님들은 명문대 진학 확률과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을 고려하면 이과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조언을 해 주셨다.
“Why not?”
문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하며 나는 씩씩하게 이과를 선택했고, 그 후 수학과 물리 앞에서 처절히 패배했다. 하지만 여전히 오기어린 나의 역발상은 계속되었다. 글쓰기에 자신이 있어 들어간 대학신문사에서 과학담당 학술부 기자를 자진하여 기술 심포지엄을 쫓아 다녔고, 한 때는 문과와 이과 사이의 견고한 벽을 허무는 과학부 기자 역할을 꿈꾸기도 했다.
미국에 오면서 경력이 단절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초에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한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은 미국 사회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외국인으로서의 언어장벽은 객관적인 불완전함과 주관적인 열등감으로 인해 늘 나를 위축시켰다.
미국에 오래 산 지인들은 수려한 영어가 필수적이지 않은 회계사나 기술직을 권하였지만, 인생을 한 방향의 일직선으로 생각해 온 나는 한국에서 소비자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했으니 미국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으면 누가봐도 손색없는 이력이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학원 입학을 위한 시험성적이 나오지 않아 수험기간은 예상 외로 길어졌고, 박사학위 취득이 내가 진짜 원하던 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자기 합리화가 일어나고 있을 즈음 미국에서 오래 살아 온 한 지인이 나에게 변호사의 길을 권해 주었다.
아무리 한국보다 미국이 변호사 되기는 쉽다고 하지만 원어민도 들어가기 힘든 로스쿨과 원어민도 떨어진다는 변호사 시험을 외국인인 내가?! 하지만 고민도 잠깐, 나는 문과 기질이 충만한 상태에서 호기롭게 이과를 선택했던 것처럼 관사와 전치사 사용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용기있게 로스쿨 도전을 감행했다.
입학 허가를 받을 때까지만 법에 대한 기본을 임시로 배우고자 수강하기 시작한 근처 2년제 커뮤니티 대학의 패러리걸(준법률가) 과정은, 2008년 경제위기로 공부 좀 했던 이들이 로스쿨로 몰리면서 추가 합격자 명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계획에 없던 자격증 취득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패러리걸 자격증 취득의 마지막 관문인 120시간의 인턴 경험을 위해 나는 몇몇 주변인들에게 무보수라도 좋으니 로펌의 일자리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었고, 친구의 아는 분 남편이 다니는 중형 로펌의 인턴 자리를 소개받았다. 그 즈음 나에게 찾아 온 뱃속 아기와 함께 한 로펌 인턴생활 9개월은 그로부터 3년 뒤 한국 대기업 법무팀 산하 실리콘 밸리 오피스의 패러리걸로 재취업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할까 말까 주저되는 일 앞에서 말지 쪽으로 마음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듯할 때 한 번씩 되뇌이는 “why not?”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을 조금 늦춰 주었고,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할 때의 설레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