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말보다 울림이 크다
행동은 말보다 울림이 크다
“때려 쳐!”
남편의 한국 출장으로 말 못하는 아이의 독박육아를 하던 내가 연이은 남편의 해외 출장 일정을 듣고 홧김에 보낸 이메일의 전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가는 출장에 그런 말을 한 내가 좀 심했다 싶지만, 당시에는 하루치의 육아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며 풀었던 친구없는 아기엄마로서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이거 해 볼래?”
남편의 답장은 달랑 이 한 마디에 패러리걸을 찾는 한국계 대기업의 구인공고 링크가 전부였다. 비난과 타박의 말 대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안해 준 남편 덕에, 나는 일주일 만에 인터뷰를 마치고 운좋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차로 편도 40분 가량 되는 출퇴근 시간은 매 순간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최우선으로 해 왔던 나에게 훌륭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육아가 아닌 다른 주제를 외부의 간섭없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팟캐스트 원어민의 발음을 부끄러움 없이 큰 소리로 따라 말하는 연습을 해 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으며, 흥이라도 날 때면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재미난 무대였다.
재취업을 통해 되찾은 내 일은 시간의 가치를 정량적으로 보상받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 외에도 일상의 폭과 타인과의 교류 빈도를 높여 나의 생각과 말을 더욱 깊어지게 해 주었고, 엄마로 살면서 어느 정도 반납해야 했던 내 시간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왜?”라는 호기심을 보이는 것처럼, 나도 회사의 법률 업무에 익숙해 지면서 특정 이슈에 대해 “왜?”라는 호기심이 종종 생겼다. 좀 더 제대로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과 내 직급이 가지는 유리천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커질 무렵, 나는 로스쿨에 재도전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너무 멀리 생각하거나 깊게 고민할 것 없이 딱 한 해만 더 로스쿨 입학을 시도해 본다면 앞으로도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따로 놀러 다니는 일상이 시작되었고,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쳐갈 무렵 나는 41세의 나이에 로스쿨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낮에는 풀타임으로 패러리걸 업무를 하다가 저녁에는 로스쿨 파트타임 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밤이 되어서야 잠든 아이를 만나는 몇 년 간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지만, 기한이 정해진 일이기에 할 만했다. 그리고 나의 로스쿨 생활이 내 몫의 육아와 가사일을 모두 떠맡아 준 남편의 배려와 아이의 이해로 가능했기에 공부하는 자체가 고된 일이라기 보다는 운좋게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여겨졌다.
과거의 모든 선택은 옳다고 믿는다. 지난 날의 내가 불확실한 변수와 알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종종 내 모습이 빠진 아이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사진을 볼 때 마다 다시 오지 않을 아이의 유년시기에 좀 더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공부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임박한 시험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불안해 하는 내 옆에서 나를 격려하고 다독였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아이와 다른 방식으로 늘 함께 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함께 있을 수 없었기에 더불어 보내는 한정된 시간이 더욱 소중했었고, 아이는 나의 자잘한 간섭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