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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Oct 06. 2024

로스쿨 입학시험(LSAT)에 대한 단상

정해진 기한은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다

미국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며 토플과 GRE를 준비해 봤던 나에게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인 LSAT은 재미난 시험이었다. 일단 수학 섹션이 없었고, 대부분의 문제는 독해력과 논리력을 요하는 문제로 구성된 시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학섹션이 없다고 해서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시험준비에 투자한 시간 만큼 일상 생활에서도 활용 가능한 독해실력과 논리력은 어느 정도 늘어나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험이었다. 외워야 할 단어들도 고전 문학에나 등장할 법한 고어 보다는 교양인들이 자주 쓸 법한 고급 어휘들이 많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일단 LSAT 시험을 등록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LSAT은 일 년에 응시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고 로스쿨에 따라서는 이전에 받은 낮은 시험점수까지 검토될 수 있기에 시험삼아 볼 만한 테스트는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시험일이 정해진 뒤에 나의 하루하루는 의미가 생겼다. 


오늘이 더 이상 어제나 내일과 같은 평범한 하루가 아니라 ‘시험일로 부터 며칠 전’이라는 긴장감 있는 하루가 되었고, 그 때까지 마쳐야 할 일을 역산하여 나눈 오늘 분량의 할 일이 있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오늘은 뭘 하며 보내지 하며 막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 ‘오늘 해야 할 일은 이거지’하며 침대에서 일어나고 ‘계획한 일 중 얼마를 달성했네’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기대와 예측과 평가가 가능한 그런 날.


죽음이 삶을 소중하게 만들 듯, 기한은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본능에 충실한 나날을 보냈던 나는 기한이 정해진 뒤에는 나름의 목표를 향해 계획한 대로 더디더라도 꾸준히 움직이는 하루를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험의 지루함과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찾게 된 여러 스터디 파트너도 LSAT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소중한 인연이었다. 지역 대학의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지만 제2의 커리어로 변호사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했던 S가 집에서 손수 끓여 줬던 차이티의 향과 맛, 동네 도서관에서 함께 모의고사를 보며 격려를 나누던 K가 스피킹 훈련 방법으로 추천해 준 근처 토스트 마스터 모임에서의 첫 날, 스타벅스에 앉아 틀린 문제를 함께 검토하던 E의 결혼식에 드레스를 입고 들러리를 섰던 경험은 LSAT이라는 공통분모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결국 원하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떤가, 해 볼 만큼 해봤다는 속시원함과 그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연으로 삶은 더욱 다채로워지기에 결국 이득인 것을. 그렇게 나는 혼자 또는 더불어 LSAT 시험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점수를 올릴 수 있었고, 로스쿨 학비의 1/4을 장학금으로 받으며 합격통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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