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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Oct 06. 2024

어쩌다 미국

할까 말까는 하고 본다

결정을 남에게 미루는 편이다. 아니, 결정에 대한 책임을 별로 지고 싶어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아무거나”, 여행지를 고를 때도 “아무데나”, 약속시간을 정할 때도 “아무때나”가 나의 일관된 대답이었고, 남의 결정과 선택에 묻어가는 스스로를 배려있는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선택을 집요하게 강요받을 때의 내 기준은 늘 새로운 것이었다. 안 가본 곳에서 안 먹어 본 음식을 맛보며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 첫 경험에 곧잘 설레곤 하는 나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때 새로운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고, 그렇게 넓고 얉은 경험과 인간관계를 쌓아갔다.


그래서일까. 평균 유효기간이 3개월에 못 미치는 나의 연애 경력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배우자를 찾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렇게 혼자 살아도 나쁘지 않겠는 걸 하는 자기 위안에 어느덧 마음이 편안해져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이 서른으로의 진입을 두 달 여 앞둔 어느 날, 함께 일하던 과장님께서 주재원으로 미국에 파견될 남동생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고 싶은데 한 번 만나보고 괜찮으면 친구라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어색함보다 호기심이 늘 앞서던 나는 별 생각없이 소개팅 날짜를 잡았고, 그로부터 정확히 134일 뒤 우리는 신혼부부가 되었다.


해외살이는 내 인생계획에 없었다. 여행으로는 외국에 나가도 살러 갈 생각은 전혀 없었던 나는 상대에 대한 마음이 커져 갈 수록 고민도 깊어졌다. 지금까지 성실한 학생처럼 작성해 온 인생의 모범답안과는 너무도 다른 생경한 길이 내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직장에서는 이제 막 대기업 대리 2년차를 마치고 부서장에게 최고 고과를 받아 해외 영역으로까지 업무범위가 확장될 수 있던 찰나였고, 부모님도 다섯 딸 중 세 명을 이미 출가시킨 뒤라 남은 두 딸과 호젓하고 단촐한 생활을 좀 더 이어갔으면 하고 내심 원하시던 때였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학연도 지연도 없는 미지의 땅으로 떠나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한다는 아쉬움과 과연 내가 새로운 곳에서 이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언제 투자금이 고갈되어 파산할 지도 모를 국내 벤처기업의 미국 주재원이라는 상대방의 불확실한 미래도 내 두려움을 한층 가중시켰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이 익숙하고 별다른 불만이 없다는 것이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길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양갈래 길에서 선택을 망설인다는 것은 양쪽 모두 좋고 나쁜 점이 비슷하다는 반증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렇다면 할까 말까 주저되는 일은 일단 하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 선택으로 하게 된 일은 그만큼 내 삶의 영역을 넓혀줄 테고, 설령 잘못된 선택이라 할 지라도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어디에 맞지 않는지 하나 정도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인간의 두뇌는 매우 명석해서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이어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를 잘도 찾아낸다. 나는 내가 한국에 두고 가야 하는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아쉬움보다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된 인연을 드디어 만나게 된 점에 감사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살아남은 스파르타식 생활습관과 정신력을 미국이라는 넓은 곳에서 적용해 볼 생각에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른을 맞이할 때까지 늘 안전한 모험과 검증된 선택 만을 해 왔던 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편도 티켓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민가방 달랑 두 개와 약 5개월 전에는 완벽한 타인이었던 신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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