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콩나물무침에 성공하다 >_____<!!!!!
나는 선천적으로 간이 안 좋은 편이라 언제나 콩나물무침은 나에게 소중한 원픽음식이었다!
아삭아삭한 식감도 고소하고 매콤짭짜롬한 맛도 나의 입맛에 딱 맞았던 콩나물무침.
어릴 적부터도 온 가족들이 좋아하는 어머니가 자주 해주신 반찬이었는데,
자취를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언제나 어머니의 복잡해 보이는 레시피를 따라 할 자신이 없어서 만드는데 망설이곤 했다.
5식구나 되는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언제나 큰 분홍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시장에서 사 온 약 1kg 남짓 한 콩나물을 가득 채워 박박 무쳤던 어머니표 콩나물 무침.
어머니의 레시피에는 태양초 고춧가루, 냉동실에 미리 얼려놓은 다진 마늘, 잘게 썬 대파, 소금, 참깨, 몸 어디에 좋다는 갖은 시크릿가루들이 들어간, 영양도 맛도 풍부한 맛이 나는 콩나물 무침이었는데, 나는 옆에서 보조를 돕곤 했다.
늘 다른 반찬을 만들다가 마지막에 만드는 순서인 탓에, 손에 빨간 양념을 잔뜩 묻히고 있던 터라 어머니는 행여 양념이 봉지에 묻을까 봐 막둥이인 나를 부르셔서 이것저것 시키셨다.
“다시다 조금 손에 쏟아줘, 참기름 조금만 부어줘..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계속 부어줘..”
라며 나에게 조금씩 눈계량을 요구했는데, 조금이라도 많이 쏟게돼면 나 때문에 요리를 망칠까 봐 긴장하면서 양념을 쏟아드리곤 했다. 때로는 티브이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던 도중 부르셔서 조금 짜증이 났기도 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커다란 분홍색 바가지에 무친 콩나물 무침은 나의 기억엔 엄청난 계량기술과 노동력이 많이 투자되었던 음식이라 기억이 되었고, 그래서 도전하기가 늘 망설여졌던 음식이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집 근처의 식당을 자주 다니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무침이 맛있어서였다.
메인요리보다 콩나물무침에 집착해 두 그릇씩 비우곤 하던 나는, 이럴 바에는 집에서 콩나물무침을 만들어 먹어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우리들의 친구 챗 gpt에게 콩나물무침 간단 레시피 알려줘! 를 검색해 봤다.
재료는 콩나물, 고춧가루,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깨소금 정도로 나왔는데, 나는 과감히 깨소금을 생략하고 만들기로 했다. 요리방법을 참조해 보니 내가 봐왔던 어머니의 콩나물무침 레시피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커다란 압력솥에 넣고 약 10분 정도 푹 삶아야 하고, 그 과정 중엔 뚜껑을 절대 열면 안 된다고 일러 주셨는데, 만약 뚜껑을 열게 되면 콩나물 비린내가 확 퍼져서 먹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지피티피셜 단순레시피에서는 오히려 뚜껑을 개방해 놓고 아삭한 식감을 내기 위해서는 3분만 데치라고 나와있었다. 나는 단순레시피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1. 나의 유일한 냄비인 양은냄비에 콩나물 300g을 가득 넣고 약 3분간 데쳤다.
2. 차가운 물에 헹궜다.
3. 위에 적힌 고춧가루,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을 나의 눈대중과 입맛대로 넣고 양은냄비에 조물조물 무쳤다.
4. 완성.
결과는 어땠냐 하면, 세상에.. 너무나 내 입맛에 딱 맞는 콩나물무침이 완성되어 버렸다.
정말 별거 넣지 않았는데 어쩜 그렇게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지..
그 자리에서 콩나물무침 300그람을 라면 한 개에다가 우와 맛있다!!!!! 를 연발하며 냠냠 먹어버렸다.
만드는 과정도, 만들어낸 맛도, 나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콩나물 무침이 만들기 쉬웠던 것인가..? 이렇게 별거 안 넣고 쉽게 만들어도 맛있다고?
라면만큼 빨리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고? 세상에.. 맨날 해 먹어야겠다..
어머니의 콩나물무침은 더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갔는데, 심지어 제조방법까지도
내가 알던 것과 정 반대로 만들어도 아무런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있다니!!!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머니는 어머니를 비롯한 5인을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해 오셨고, 나는 1인인 나 혼자를 먹이기 위한 음식을 했던 탓이다.
당신이 만든 음식이 가족들의 입으로 팔리지 않을 경우, 5인분의 음식물 쓰레기처리를 해야 하는 고단함과 식재료에 대한 아까움이 있을 것이고, 나는 내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나만 만족스럽게 먹으면 그만인 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먹이기 위한 정성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정과 방법이 복잡해 보였으리라 생각해 본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머니는 콩나물 무침을 과연 좋아하셨을까? 당연하게 일상적으로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반찬에 대한 어머니의 음식 취향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반찬투정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양념을 쏟아주면서 짜증을 냈던 어린 날의 내가 미안해진다. 당신도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요리해 드실 수 있었으면 나처럼 편했을 텐데.
본인에게 더 맛있는 방법의 레시피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자취를 하니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 무언가를 해 달라고 요구만 하면 대부분 밥상에 차려주셨던 그 수고에 대한 감사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 자체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요리를 한 번이라도 해 드린 적이 있었나 싶다. 언젠가 어머니와 다시 화해해 사이가 좋아지게 되면, 명절음식을 내가 다 준비해서 차려 가야겠다. 하나하나 다 손수 직접 준비해 봐야겠다. 그렇게 해서, 몇십 년 세월간 이어졌던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이 당연했던 것이 아님을 위로해 드려야지. 반찬은 하나하나 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