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조직과 수평 조직, 과연 나는 어디서 일하고 싶은가
팀원분께 근래 고민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시작은 간단한 질문이었으나, 그 질문은 더 깊어만 갔고,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왜 퇴사했어요?"
나는 이전 회사를 나름 사랑했다.
그럼에도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2년간의 첫 회사 생활은 막을 내렸다.
퇴사 전 다른 부서의 모집공고가 있어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세일즈 직군이 아니었지만, 한 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선택지였다.
해당 공고는 리스크 팀이었고, 높은 수준의 꼼꼼함과 안정성을 요구하는 팀이었다.
나는 그 업무를 가장 잘 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지원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2년 동안 실무를 하며 바꾸고 싶다고 느꼈던 것들이, 결국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 기억의 희미해진 탓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체감하기로는 많은 것들이 그대로였고,
변화가 있었더라도 하나의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늘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위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직적인 문화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두 번째 질문은
"수직적인 문화가 뭐예요?"
사실 나는 이것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명쾌하게 답할 만큼 심각하게 고민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경험을 통해 표면적으로 수직적이다라고 일방적인 정의를 내린 것일 뿐, 정말 수직적인 문화가 뭔지 깊은 고민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10초 간 고민을 내린 끝에 이렇게 답했다.
"비효율적인 것이요."
그 뒤에 나온 세 번째 질문은 나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수직적인 조직은 비효율적인가요? 그럼 수평적인 조직은 효율적이에요?"
"효율적인 것이랑 수직적인 조직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불과 3개의 why로 내 고민의 한계가 드러났다.
항상 내 자리에도 5 why, 골든서클모델에 대한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는데 말이다.
정말 부끄러웠다.
표면적으로만 생각하고 단정 지어 답했다는 게 말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통해 수직적인 조직과 수평적인 조직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1. 수직 조직은 '통제의 기술'이다.
수직 조직은 흔히 보수적이고 답답한 구조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수직 조직은 인간의 한계를 전제로 설계된 시스템에 가깝다.
수직 조직의 강점은 분명하다.
1) 책임이 명확하다.
누가 결정했고, 누가 책임지는지가 분명하다.
위기 상황이나 대규모 운영 환경에서는 이 명확성이 큰 힘이 된다.
2) 확장에 강하다.
사람이 바뀌어도 시스템은 돌아간다.
개인의 판단력이 아니라 프로세스가 성과를 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불확실성을 줄인다.
규칙, 승인, 절차는 느려 보이지만 그만큼 리스크를 차단한다.
실수를 막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구조다.
문제는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 구조는 현실을 빠르게 인식하는 데에는 약하다.
현장에서 느낀 문제는 보고용 언어로 바뀌고,
위로 올라갈수록 맥락은 희미해진다.
결정은 점점 안전해지지만, 동시에 현실과 멀어진다.
2. 수평 조직은 '판단의 위임'이다
수평 조직은 자유롭고 진보적인 문화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본질은 문화가 아니라 권한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수평 조직의 핵심은 단순한다.
"이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결정하게 하자."
그래서 수평 조직은 이런 장점을 가진다.
1) 현실 인식이 빠르다.
문제를 보는 사람이 바로 판단한다.
보고와 승인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2) 사고가 살아있다.
구성원은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
3) 몰입이 생긴다.
내 판단이 결과로 이어진다는 감각은 일을 '업무'가 아니라 '책임'으로 바꾼다.
하지만 수평 조직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성숙하지 않은 개인에게 수평은 자유가 아니라 방치가 된다.
3.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인간관'이다
이쯤에서 깨닫게 된다.
수직 조직과 수평 조직의 차이는 빠르냐 느리냐의 문제가 아니다.
수직 조직은 이렇게 묻는다.
"인간의 판단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수평 조직은 이렇게 묻는다.
"인간은 판단할 수 있다. 어떻게 믿고 맡길 것인가?"
그래서 수직 조직은 실수를 막는데 강하고,
수평 조직은 실수에서 배우는 데 강하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의 성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4. 내가 힘들었던 건 '수직 조직'이 아니었다.
나는 팀원과의 대화에서 "수직적인 문화가 비효율적이어서 퇴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힘들었던 건 그 위계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발견한 문제와 판단이 구조적으로 무력화되는 경험이었다.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까지 연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판단 권한은 항상 나보다 먼 곳에 있었고,
나는 점점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 순간부터 일은 느려졌고,
답답함에 내 행동을 유예하곤 했다.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며 내린 결론은 단순한다.
수직 조직이 나쁘지도, 수평 조직이 정답도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질문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문제를 마주하고 싶은가?"
누군가는 안정적인 구조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다.
누군가는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책임감을 갖고 성숙한 태도로 일할 때 내가 속한 조직이 원하는 이상적인 문화에 다가감을 다시 한번 느끼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