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러 인계를 길게 해 아마추어같이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신규 간호사였던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계 시간은 멘털이 탈탈 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신입이다 보니 인계를 받아도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쳐나는 오더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한데 입원은 밀려들어오고, 당연히 앉을 시간도 화장실 다녀올 틈도 없고, 밥을 굶고 일을 해도 인계를 준비하지 못했고, 결국 다음 듀티 선생님께 말로 얻어터지는 그런 악순환의 반복이었죠.
(진심으로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길 바라는 바입니다.)
한국에서는 인계만으로도 20-30분을 쉽게 보내는데요, 미국은 그와 많이 다릅니다. 인계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드셨던 선생님들, 미국에선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한 2주 정도는 프리셉터와 함께 근무하고 프리셉터가 백을 봐줍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독립의 날이 다가와도 어차피 매 듀티마다 차지 간호사를 포함한 시니어 간호사 1-2명쯤은 있기 마련이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모를 땐 시니어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고, 그렇게 여러분이 성장하셔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간호사들을 돕는 선순환을 일으키면 되니까요.
제가 근무한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 시, nursing assessment를 작성했습니다. 웬만큼 병력이 길지 않은 이상 대부분 앞뒤 양면 1장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슷한 사진을 하나 가져와봤습니다.
병동에 출근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나에게 배정된 환자를 이전 듀티동안 담당한 간호사가 먼저 나에게 다가옵니다. (얼른 인계를 주고 퇴근하기 위함이죠.) 위와 같은 종이를 팔랑팔랑 들고 올 겁니다. 그러면서 정말 간단한 경우
"환자 이름 000, 병실 ***호, COPD 때문에 O2 sat. 70%대 후반까지 떨어져서 이틀 전에 입원함, 지금 02 3L에서 상태 stable 함, baseline 86%이고 지금 87% 나오고 있음. 진짜 간단한 케이스임, 이따 오전 회진 후 퇴원 오더 나면 집에 보내주면 됨. 쉽지? 그럼 난 집에 갈게, 안녀엉~"
이렇게 끝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환자 1명당 10초도 안 되는 인계가 상당히 많았고, (저도 때때로 그랬고 하하^^;) 앞으로 미국에 가실 여러분도 언젠가는 이런 인계를 주실지 모르겠으나, 일단 오늘은 정석을 이야기해 봅시다.
Nursing assessment만 봐도 환자의 기본 상태와 병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셨던 선생님이시라면 한번 쭉 훑으면 대충 파악이 될 겁니다. (경력이 없으시다고요? 그럼 미국에서 조금만 일하시면 감이 올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종이가 있으면 웬만한걸 다 알 수 있는데 그럼 인계가 왜 필요한 거냐?'라고 물으실 수 있겠습니다. 인계를 통해 저 종이에 없는 중요한 사항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이미 잘 아시겠지만 알레르기나 전파 가능한 바이러스 감염 여부 등의 정보는 간호사를 위해서도 중요하니 꼭 숙지하시고, 다음 간호사에게 인계할 대도 언급해 주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인계의 정석은 환자의 침상에 이전 듀티 간호사와 함께 가서 환자에게 자신을 소개한 뒤, 그 환자를 새롭게 assess 하면서 이전 듀티 간호사로부터 중요한 사항을 전달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Nursing assessment는 입원 시에 작성되어 전반적인 정보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저 종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경우는 상당히 드뭅니다. 워낙 바빠서 다들 본인 듀티에 발생한 일들에 대해 EMR기록 남길 시간도 모자라다 보니 고작 이 인계 종이쪼가리(...)를 업데이트할 틈조차 없기 때문이죠. '이전 듀티에 갑자기 환자가 열이 나기 시작해서 blood culture를 나갔고, 그 결과를 현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와 같은 아주 최근의 내용은 당연히 저 인계장에 적혀있지 않습니다. 이런 건 이전 듀티에 환자를 담당했던 간호사만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인계를 통해 이런 정보를 얻어내셔야 합니다. (물론 EMR을 뒤지면 다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사항을 근무 시작 때 파악하면 처음부터 적절한 간호 계획을 세워 더 높은 질의 간호를 제공할 수 있겠죠.)
만일 벤트 환자라던지 혼자 거동이 불가능한 와상 환자의 경우, 환자의 bedside에서 인계를 받으며 피부 상태와 욕창 여부도 꼭 확인하시는 걸 권장합니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그에 맞는 간호 및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의사 선생님들도 회진을 돌긴 하지만 환자의 몸을 모든 각도에서 assess 하는 분은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욕창의 경우 특히 더 간호사들이 미리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러 중요한 사항에 대해 인계를 주고받아도 좀 복잡한 벤트 환자가 아닌 이상 환자 1인당 3분 이내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처럼 "000호 ***님, 여자, ㅁㅁ세, 000을 주 호소로 0000년 0월 0일에 입원하셔서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온갖 히스토리를 낭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렇게 하나하나 다 읊으면 최근 상태에 대한 내용에 이르기까진 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세세한 거 궁금하면 알아서 EMR을 보면 됩니다.
... 인계 참 쉽죠?
(커버 이미지: Photo by Sebastian Dumitru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