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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하마 Jan 21. 2024

¡No hablo español!

죽어라 영어 공부를 했건만 현실은 스페인어 천국

난 분명 미국에 왔는데

열심히 영어 공부해서 미국 영주권도 따고 뉴욕의 큰 병원에 취업도 했는데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환자들이 다들 스페인어를 했기 때문이죠. 스페인에 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고, 스페인과 관련된 것이라곤 'The Mask of Zorro'에서 보고 반한 Antonio Banderas 아저씨 밖에 없던 저에게 큰 난관이 펼쳐졌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봐도 아저씨는 정말 멋져

스페인어 못해도 괜찮아!

미국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스페인어가 빈번히 쓰입니다. 제가 일했던 뉴욕에선 심지어 영어는 전혀 못하고 스페인어만 하는 인구가 상당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뉴욕은 영어를 못해도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제가 맡았던 환자들 중 30% 이상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들이 입원한 이상 저는 어떻게든 간호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입원, assessment, 바이탈 측정, 통증 측정, 금식 등등 병원에서는 환자와 의사소통할 일이 참 많습니다. 양질의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선 정확한 의사소통이 필수이죠. 다행히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 중남미에서 온 간호사들이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서 큰 도움을 줬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바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요?


병원에서 통역 서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통역사를 병동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주로 전화로 통역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통역사가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오더 난 사항에 대해 처치를 미룰 순 없죠...) 의료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에게 전화를 하면 됩니다. (물론 비용은 병원이 냅니다.) 워낙 다인종이 모여사는 나라이다 보니 이런 서비스가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어로 예를 들었지만 그 외의 다양한 언어로도 통역 서비스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호사도 적응의 동물

안타깝게도 전화로 하는 통역 서비스가 간호사 입장에서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병동에 1개밖에 없는 무선 전화기를 어떻게든 차지해서 통역 서비스에 전화를 한다고 해도 통역사가 바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환자를 바로 앞에 두고서 제삼자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느라 시간도 꽤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늘 스피드를 추구하는 간호사들은 "안녕하세요, 어머니/아버지~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 함께할 간호사 000에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오늘 기분 어떠셔요? 00질환 때문에 입원하신거라고 들었는데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데 있으세요? 자, 이거는 (관련 신체 부위를 가리키며) 여기를 위한 약~" 등의 아주 필수적인 스페인어를 결국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됩니다^^.


저희 병원의 경우 워낙 스페인어밖에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보니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간호사들을 위한 스페인어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스페인어를 못하는 간호사들에게 강제로 오프날에 출근하면서까지 수업을 들어라고 했겠지만, 미국이었기에 원하는 간호사들만 대상으로 출근 날에 맞추어 1대 5 과외같이 진행했었는데요. 이 수업을 위해서 2-3시간 동안 다른 간호사들이 수업듣는 간호사의 업무를 커버해주느라 점점 원성이 높아져서 결국엔 수업이 유야무야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정말 다행인 건 미국 내 히스패닉 분들은 상냥하십니다.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하게 생긴 간호사가 첫 만남에 'Buenos dias! (스페인어로 '좋은 아침')' 한마디만 해줘도 간호사에 대한 그분들의 신뢰는 꽤 많이 상승합니다. 제가 만났던 히스패닉 환자분들은 대부분 되게 마음씨가 따뜻하시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개중에는 스페인어와 영어 둘 다 완벽하게 하시는 환자분들도 많으셨는데, 제가 스페인어밖에 못하는 환자와 의사소통을 못해 쩔쩔매는 걸 보시고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감사할 따름이었죠.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해라

비록 저는 저렇게 일했지만 (... 반성합니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언어가 다른 환자를 대할 경우 통역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게 원칙이기도 하고요. 통역 서비스는 환자와 간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우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여 양질의 간호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환자를 보호합니다. 뿐만 아니라 추후에 medical malpractice와 같은 의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언어의 차이로 인한 문제는 없었음을 증명하여 간호사를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대신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신다면 통역 서비스를 이용할 때, 통역사 고유 번호를 받아 꼭 간호 기록에 남기셔야 합니다. 그래야 통역 서비스를 사용했음을 입증되니까요. (간호사는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거 굳이 설명 안 해도 다 아시죠?)


결론만 말하자면 스페인어를 못하셔도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간호사로 취업할 때 취업 공고에 '스페인어 필수!'라고 쓰여있지 않는 한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취업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 상황이 닥치면 그대로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를 경험하시고 즐기시면 됩니다. 처음엔 꽤 당황스럽고 불편한데 그 또한 하다보면 괜찮아질 겁니다. 우리가 거쳐왔던 모든 경험들처럼 말이죠.



(커버 이미지: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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