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저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싶었습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다보니 다양한 요구를 해오는 환자분들께 살갑게 대하는게 어려웠기 때문에 환자 및 보호자들과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적어 간호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중환자실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호부는 저를 중환자실이 아닌 다른 병동에 배치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Telemetry unit
Telemetry unit이라는 곳에 대해 들어본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에는 따로 본 적이 없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Telemetry unit은 어떤 환자들이 오는 곳일까요?
출처 - National Telemetry Assocation
National Telemetry Associaton에서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주로 심혈관계나 호흡기계 환자들이 많이 입원하긴 합니다만... 저희 병원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왠만한 내과계 환자들은 다 저희 병동으로 왔던 것 같습니다. 이름이 Telemetry인 만큼 이 병동에 입원하게 되면 cardiac monitoring이 필수이지만 환자분들 입장에선 EKG lead와 pulse oximetry를 몸에 붙인 채 모니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다보니 생활하기에 불편하다는 호소를 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끌고 다닐 수 있는 수액 하나만 팔에 달고 있어도 불편한데, 고정된 모니터에 몸을 연결하고 있어야 하니 환자분 입장에선 움직임 반경이 줄어 불편할 수 밖에 없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cardiac monitoring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여기까진 좋습니다. 문제는 저희 병동이 일반 병동과 중환자실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Telemetry unit 간호사로서 제가 본 미국의 일반 병동은 거의 요양병원처럼 환자의 상태가 대부분 stable 한 평화로운 인상이 강한 곳 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반면 중환자실은 다들 아시는 바와같이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죠. 개념적으로 그 양극단 사이 어느 지점에 저희 병동이 위치했는데,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저희 병동은 '중환자실+일반 내과 병동'에 가까웠습니다. 내과계 중환자실 병상이 단 8개 였기 때문에 그 곳에서 수용되지 못한 환자들은 다 저희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애초에 병원에서 Telemetry unit 간호사들을 고용할 때 중환자실 업무도 커버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선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저희 병동에서는 중증도 수준이 중상에서 최상인 환자들 모두를 담당했습니다. '그럼 담당할 환자가 모두 중환은 아니니 업무 스트레스가 덜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들어올 수 있겠네요.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중환자실은 워낙 병상수가 적어 간호사 수:환자수 = 1: 2 (최대 3)으로 잘 유지되었던 반면, 병상수가 40개나 되는 저희 병동에서는 간호사의 업무량이 과중되었습니다. 병원 규정 상 저희 병동 내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은 1:4 (ventilator 환자 1명 포함)이었지만, 저게 지켜지는 날은 기적이라고 불리울만큼 거의 없었습니다. 간호사 1명당 배정된 환자 수는 cardiac monitoring 환자 4-5명에 multiple IV drips를 달고 있는 ventilator 환자 2명 정도가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 같아요.
4인실, 6인실 등 다인실이 있는 한국과 달리 제가 일했던 미국 병원에서는 한 방당 최대 수용 인원이 2인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환자들의 방이 다 달랐는데요. MRSA나 VRE 등으로 인한 격리 환자가 있으면 병실에 출입할 때마다 추가 보호 장구 (가운 등) 착용으로 인해 매 처치마다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어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답니다.
게다가 중환들이 많이 있다보니 cardiac/respiratory arrest가 발생하는 빈도가 1일 1회 이상으로 잦았습니다. 내 담당 환자에게 코드 블루가 한번 발생하면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다른 환자에게 신경쓰기 어렵기 때문에 업무가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기준보다 많은 환자 수에 응급상황이 더해져서 업무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데이 쉬프트였기 때문에 오전 7시 30분에서 오후 19시 30분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는데, 늘 업무량에 치여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건, 태움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를 도와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다른 간호사들을 기꺼이 도왔습니다. 저희 병동의 팀워크는 어디에 내놓아도 빛날 만큼 어마어마 했답니다.)
일은 힘들었지만 남은건 즐거운 기억 뿐
워낙 여러모로 험한(?) 병동이다 보니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간호사들은 복지가 더 나은 병원을 찾아 떠나 거의 없었고, 저와 같은 이민자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되었습니다. 병동 내 간호사의 국적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필리핀>한국>중남미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 리코, 아이티 등) 순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낮은 시급이지만 그마저도 본국에서 받는 급여에 비해 높았고, 복지 수준이 높은 병원 내 포지션은 이미 미국에서의 간호사 경력이 긴 사람들이 차지하여 이민자로서 진입하기에 장벽이 높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는 '이민자'라는 공통분모로 더더욱 끈끈한 유대를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경력을 쌓아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병원으로 이직하는 동료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었고,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면서 말이죠.
따갈로그,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이렇게 4개국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참 즐겁게 일했습니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엔 제 몸무게의 약 2배인 환자들을 케어하느라 지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었지만, 되돌아보면 여러 응급 상황을 거치며 문제 해결 능력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었던 시간은 바로 이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