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K-직장인으로 산다는 것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하나 있다. 나는 부조리함을 느끼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한 고민을 부모님께 털어놓자, "아빠를 닮아서 그래." 라는 말이 돌아왔다. (우리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회사와 가장 안 어울리시는 분이다.)
내가 아빠를 닮아 생긴 직장생활 일화가 하나 있다. 첫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은 영어교육에 진심인 부모님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어학원이었다. 오후 2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스케줄이었는데, 업무강도가 꽤 높아 한두 시간 초과근무가 일상이었다. 동료들과 다 같이 야근을 하고, 서로의 막차시간을 신경 써주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곤 했다. 이런 게 보통의 회사 생활인건지 어리둥절하며 다니던 때 사건이 터졌다. 출근시간 10분 전,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팀장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있고,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출근 10분 전에 전화를 한다고?
그날 전화를 받은 건 여러 명이었지만, 그분을 찾아가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라고 말했던 건 나뿐이었다. (당시 나는 만으로 스물두 살이었다.)
그렇게 단 둘이 마주 앉아 1:1 면담이 시작됐다.
“무슨 일이에요?”
"아까 하신 말씀이요. 10분 전 출근은 할 수 있는데, 그건 퇴근시간이 지켜질 때 얘기 아닌가요?"
당황한 팀장님의 모습을 처음 봤다. 전화를 했던 건 선생님들이 자리에 없어 걱정이 되어서라고 말씀하셨다. 논리가 통째로 무너진 답변에 나는 대화를 더 이어가길 포기했다.
나의 'K-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일화를 전해 들은 가족과 친구들은 숨 넘어갈 듯 웃으면서도, 보통은 그런 상황에서 억울해도 그냥 넘어갔을 거라고 했다.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남의 돈 벌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거라고. 네가 좀 참으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이게 진짜 사회생활인 거라면, 나는 앞으로 쉽지 않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직감이 틀렸다. 다음 회사에서는 달랐기 때문이다. 첫 회사에서의 고충을 보상받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어려움이 없었다. 기꺼이 따르고 싶은 상사들,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 적당한 업무 강도와 일에서 느끼는 보람까지. 모든 게 너무나도 수월했다. 이렇게 쉬운 일이 왜 어떤 곳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을까?
그렇게 나의 K직장생활은 한 번의 시험과 한 번의 보상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다.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세 번째 회사를 다니기 전까지는.
Self QnA : 나 사용설명서 6화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피어오른 의문점들이 내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획대로라면, 한국에서의 150일 휴가를 실컷 즐겼으니 이제는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고민 끝에 밴쿠버행 항공권을 취소하고 한국에 남기로 했다. 캐나다에 가서 취준생으로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게 내 마음이라, 취업비자를 신청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강남에 있는 한 어학원에 입사를 했다. 그곳에서 나는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필수 관문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엘츠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1.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나요?
수원에서 강남으로 가는 직통버스를 타면 회사까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대부분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입사 3개월 차, 출근길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당시에는 회사나 일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근데 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거지?'
의문인 건 출근시간뿐만이 아니었다. 점심시간도 그랬다. 어떤 날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밥을 먹어야만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침 그날은 가장 친한 친구와 밥 약속이 잡힌 날이었다. 한 회사를 3년 넘게 다니고 있던 애라서, 내가 느낀 의문점들을 나눠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강남역에 있는 한 일식집에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막 받았을 때였다.
"야, 나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매일 회사가 정해놓은 시간에 출근해야 되는 거지? 너도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어?"
세상에 무슨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돌아온 친구의 대답.
"지금까지 회사 다니면서 그런 생각 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커피나 마셔."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다. 한 편으로는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이렇게 단칼에 잘라버릴 줄이야. 그렇게 그 의문점은 내 마음속에 1번 물음표로 자리 잡았다.
2. 과정 vs 결과, 더 중요한 것은?
나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정 vs 결과' 에서 과정을 선택하는 건,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잖아' 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결과를 고르는 건, 일을 잘해서 성과를 잘 내는 유능함으로 느껴졌다. 그게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멋있어 '보이는' 것 과 정말로 멋있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어느 순간에 깨달았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학생의 아이엘츠 수업 등록이 곧 나의 성과로 이어졌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대화의 분위기에서 대충 느껴진다. 내가 이 학생을 또 보게 될지, 혹은 오늘이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지. 많은 경우는 내 예상대로 진행됐다. 그런데 가끔씩 예외가 있었다.
우리 사이에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갔다고 느꼈지만 등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와, 반대로 나와 상대방 사이에 어떤 거대한 벽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등록으로 간 경우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물음표가 찍혔다. 전자는 (고객을 놓친 거니) 못한 거고, 후자는 (어쨌든 등록은 했으니) 잘한 게 되는 건가? 이처럼 과정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상담은, 스스로 평가하기가 애매했다.
회사의 기준에서 보면, 미등록은 실패고 등록이 성공이다. 내 성과를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오로지 수업 등록 여부였다. 상담의 내용이 아니라. 과정이 아닌 결과를 물었다. 당연하다.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니까.
그럼 내 기준에서는?
여기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1. 회사의 기준에 맞춘다.
2. 나만의 기준을 만든다.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일의 성과와 보이는 숫자들로 나를 평가하는 건 회사 하나면 충분했다. 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상담실에서 내가 느낀 만족감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과정과 결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괴리감이 사라졌다. 과정을 살핀 덕분이었다. 결과가 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멋있어 보이는 것보다도 중요했던 건 ㅡ 결과로만 나를 평가하는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아는 과정까지도 보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3.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곳이 회사라지만
일을 할 때, '하기 싫다.' 라는 생각 자체를 잘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여기서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겠지,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별생각 없이 하는 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런 내가 유일하게 하기 싫은 일이 있었다. 효율성이 제로로 느껴지는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위에서 업무를 전달받은 날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업무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일의 효율성을 계산해 보니, 이건 내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라는 결론이 났다. 이번에는 팀장님이 아닌 과장님께 솔직한 내 의견을 말씀드렸다.
"과장님, 지난번에 해봤을 때 돌아온 결과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걸 또 해야 할까요?"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제가 이런 말씀드린 적 없었잖아요, 그렇지만 이건 너무 효율성이 떨어져요."
말 잘 듣는 부하직원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버리게 했던 그 일은, 2-3년 전에 문의가 왔던 고객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리는 일이었다. 내가 입사하기도 한참 전이니, 처음 보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었다. 쉽게 말해 콜드콜링이다. 무엇보다 2-3년 전이면 이미 아이엘츠 점수를 만들고, 캐나다던 미국이던 호주던 이 세상 어딘가로 유학을 가고도 남는 시간이다. 일의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과장님 또한 그분의 상사에게 지시받은 일이었다는 걸. 아무튼, 나는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의미 없는 전화를 기계처럼 걸고 끊기를 반복하던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우리가 필요 없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 하는 거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고객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고객이 나를 직접 찾아오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일단 나를 세상에 알려야 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세 번째 회사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얻었다. 첫 번째,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ㅡ나의 경험으로 타인에게 용기와 도움을 주는 것ㅡ을 찾았다.
두 번째, 내가 견디지 못하는 환경ㅡ자율성이 떨어지는 곳ㅡ을 알게 됐다. 이를 뒤집어 보면, 내게는 자율성이 중요했다.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보기로. 그렇게 1인 크리에이터의 길로 뛰어들었다. 나는 나의 캐나다 유학 스토리를 컨텐츠로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회사 일과 달랐던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서 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이때만큼은 1)정해진 시간에 일을 할 필요도 (밥을 억지로 먹을 필요도), 2)타인에게 결과로 평가받을 필요도, 3)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엄청난 해방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느꼈다. 돈을 버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었다. 과정을 온전히 즐기니,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내가 만든 컨텐츠가 쌓일수록, 자신감도 함께 올라갔다. 이제는 캐나다로 가서 일을 하고 싶어졌다. 취업 준비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학 상담을 한 지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는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자율성이 충분한 환경에서 일한다. 이 시기는, 언젠가 완전히 자유롭게 일하기 전에 거쳐야만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그 과정 위에 있다.
이처럼 K-직장생활을 하면서 품었던 세 가지 의문점들은, 서로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나를 이 길로 데리고 왔다. 돌이켜보면, 모든 물음표들이 처음부터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의 질문
Q1.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품어본 적 있나요?
Q2. 과정 vs 결과, 여러분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Q3. 나에게 맞는 근무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에게 맞는 환경은 어떤 곳인가요?
반대로 내가 견딜 수 없는 환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