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인스타그램, 일기
시작보다도 어려운 건 지속하는 힘이다. 운동을 하다 말다 반복하면서 늘 했던 생각이다. '이번에는 진짜로 꾸준히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꾸준히 했던 건 없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별생각 없이 했던 것들을 오래 했다. 내게는 스무 살 때부터 약 10년 동안 해온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연애, 인스타그램, 일기 쓰기다.
Self QnA : 나 사용설명서 5화는, 내가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해 온 일들과 자기 이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애
솔로지옥 시즌4에 나온 한 여자출연자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남자친구 없는 귀한 타이밍" 이라는 솔직하고 당당한 말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이 있었지만, 오늘의 질문에 연애를 가장 먼저 떠올린 나는 그 말에 아주 깊이 공감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귀한 타이밍이다. 이런 시기에 연애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게 아이러니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연애 간 공백기를 생각해 보면, 모두 1년 미만이다. 스무 살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남자친구가 없었던 해가 한 해도 없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일보다도 연애를 꾸준히 한 게 된다. 이렇게 말하니 연애를 굉장히 많이 한 사람 같아 보이는데, 횟수로만 따지면 한 손으로 다 셀 수 있다.
한 번은 내 연애사를 흥미롭게 생각한 친구가 브런치 연재를 고민하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처럼 전남친 시리즈를 써주면 안 되냐고. 친구에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인생에 다섯 명도 안 돼서 분량이 안 나와 어려울 것 같다고.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서는 최소 10편의 글이 필요하다.)
나에게 연애란?
연애는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두 개의 세계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누군가 궁금해지고, 같이 있고 싶고, 신경 써주고 싶은 것. 나에게 연애는, 평범한 두 사람이 만나 둘만의 특별한 서사를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과 감정의 총합이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삶과 연애가 하나가 되는 성향은 못 된다. 하지만 내 삶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ㅡ사랑, 일, 여가ㅡ에 항상 자리 잡고 있던걸 보면, 인생에서 늘 특정 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애란, 내 인생의 전부였던 적은 없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던 적도 없었다.
왜 그렇게 연애를 꾸준히 했지?
돌이켜보면, "이제 연애를 좀 해보자!" 해서 한 적은 없었다. 내가 혼자일 때마다 나와 맞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렇게 관계를 한번 맺게 되면 대부분 오래갔다.
스무 살 무렵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이렇게 행복하지만, 오래 만나게 되면 이 사랑도 변할까?' 사랑에 빠진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흔한 걱정이다. 내 불안을 잠재워준 건 당시 읽고 있던 책 속의 한 구절이었다.
사랑에 관한 책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낡아지는 게 아닌 깊어지는 관계' 를 말하고 있었다. 깊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하고 낡아질 걱정만 했던 거였다. 책에서 말하는 연애를 인생에서 몇 번 경험하다 보니, '사랑은 함께하는 시간에 비례해 깊어지는것' 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불안함 대신, 둘이 함께할 날들에 대한 기대감만 들뿐이다.
*이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라는 궁금증이 드신다면, 저를 구독하시고 8화 'Q9. 내가 사랑을 주는 방식은?' 알림을 받아보세요.
연애는 정말 정병일까?
연애만큼 내 좋은 면과 치부가 함께 드러나는 행위가 또 있을까 싶다.
아래는 내가 연애를 하면서 해봤던 생각들이다.
내가 이렇게 유치한 면이 있었나?
내가 이렇게 성숙한 생각을 한다고?
내가 이렇게 생각이 짧았나?
내가 이렇게 이해심이 많았나?
내가 이렇게 고집불통인가?
내가 이렇게 잘 맞춰주는 사람이었나?
*여기서 '나'는 한 사람이 맞다.
이게 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했다. 유독 연애에서 그랬다.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늘 비슷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인데, 연애를 하면 달라졌다. 이제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연애에서도, 처음 보는 내가 줄줄이 등장했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됐다. 이런 점까지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구나, 반면에 이런 면들만큼은 용납이 안되는구나. 이처럼 관계 안에서 내 기준점을 알게 될수록,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렇게 나는 연애를 통해, '관계 속에서의 나'에 대해 배웠다.
인스타그램
2013년 10월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으니, 인스타 역시 연애만큼이나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일 중 하나이다. 내게 인스타그램이란,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자, '보여주고 싶은 나'와 '기록하고 싶은 순간'의 교집합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전시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맞다. 누군가는 이를 '보여주기식' 이라며 지적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 게 아니라면, 실제로는 불행하지만 억지로 행복한 척하는 게 아니라면, 문제 될 게 있을까? (나는 이조차도 올리는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척’ 하는 당사자가 제일 괴로울 테니까.)
잘 나온 내 사진을 올리고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좋아서 인스타를 했던 초반과는 달리, 이제는 나라는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해서 올리는 게 훨씬 재밌다. 여행 사진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여행지 핫플 인생샷에 목숨 걸었던 나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그 순간의 생각을 한 줄이라도 꼭 함께 남기려고 한다. 물론 인생샷도 여전히 중요하다.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 가 드러나는 게시물들이 내 공간에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라는 사람의 색깔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남들에게 표현하고 싶은 나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은 일상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이다. 꾸준한 업로드와 함께 쌓인 수많은 기록들은 그 자체로 나를 설명해 준다. 이는 프롤로그에서 말했던 'Know yourself' 와도 맞닿아 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다.
일기
일기를 쓴 지 9년 정도 됐다. 연애나 인스타그램보다는 짧은 기간이지만, 나는 일기만큼 나 자신과 빠르게, 깊이, 그리고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게 해 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이 나를 외부로 꺼내는 일이라면, 일기는 반대로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매일 나와 대화를 하면 벌어지는 일들
아래는 친한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 룸메이트 등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들이다.
버블리님은 어떻게 그렇게 감정기복이 없어요?
야, 너도 걱정이라는 걸 하기는 해?
살면서 스트레스 받긴 받아요?
> 감정기복 있고, 걱정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늘 평온해 보인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편하게(?) 살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잠시동안 고민 후 '일기쓰기'라고 말했다. 상대에게는 내 대답이 뜬금없게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진심이었다.
일기를 쓸 때면 관찰자 모드가 켜진다. 어떤 순간에 행복함을 느꼈다면 "~덕분에 행복했다." 로 끝내지 않고, 그 일의 어떤 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한번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본다. 속상하거나 불안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기장에 눈물이나 짜증을 남발하는 대신, 왜 속상했고 어떤 점이 불안했는지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이성적인 분석으로 보이지만, 실은 내 마음을 끝까지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해하려고 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보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게 하는 건 뭘까?'가 먼저 떠오른다. 이렇게 남을 평가 아닌 이해하려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사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나와도, 남들과도 평화롭다. 그저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기대도 안 한 데에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나는 일기 쓰기를 통해, 나와의 관계가 타인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나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해 준 행위라는 것이다. 반복된 자기 탐구는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스스로의 베스트프렌드가 됐다.
지금 브런치에 이런 내용의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오늘의 질문
Q1. 여러분이 꾸준히 해온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Q2.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Q3. 새로운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