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서성일 것인가? 지금 당장 어떤 문이든 열고 나아가볼 것인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어떤 문을 열어야 할까? 선택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문 앞에서 고민을 한다. 이 문을 열고 가야 할까? 저 문을 열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면서 세상에 돌고 도는 콘텐츠를 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들 사는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어떤 문을 열면 조금이라도 더 나의 삶이 행복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경제적인 부와 삶에 대한 만족감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을 하면서 한참을 문 앞에 서성이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기도 한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내가 해왔던 선택들을 되돌아보면 결국 나의 길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쪽 문을 열든 결국 내가 고민하고 있던 문들은 내가 가고자 했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이루기 위해 내 머리와 가슴이 끌리는 선택지들이었던 것이다. 내 앞에 놓인 문들은 내 안에서 나온 문들이니 1번 문을 선택했더라도, 2번 문을 선택했더라도 결국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기 위해서 곡선 길로 우회를 하든 직선 길로 빠르게 가든 큰 강물의 줄기를 잘 만나서 요란스럽게 가든 작은 시냇물을 만나서 잔잔하게 흘러 가든 결국은 하나의 길로 통하고 그 끝에는 보석이 가득한 섬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포지션을 선택하고 연애의 상대를 선택하고 이별의 순간을 선택하고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고. 인생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떤 문을 선택하든 꽃길이 있을 것이고 결국 나는 나만을 위한 보석섬에 도착할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덤덤하게 끌리는 것들에 몰입해 본다.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이는 경우가 있었다. 초기 사업은 직장처럼 어느 정도 정해진 시스템이나 규칙도 없기에 만들어 내는 데로 그것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목적 지향 중심의 뚜렷한 계획과 실행 플랜을 A부터 Z까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선택을 하기에는 세상이 예측 불가능한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기에, 짧은 목표를 세우거나 혹은 짧은 목표마저도 힘을 빼고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들로 오늘 하루를 채워 본다. 오늘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문을 여는 행위인 것이다. 오늘을 아무것으로도 채우지 못하고 문 앞에만 있었다면 내일이든 내일모레든 언젠가는 문을 열어야 하고 문 뒤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를 뒤늦게서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실행! 그 자체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바로 실행을 하지 않고 실행을 뒤로 미룰수록 실행 이후의 길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니 유한한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더 빨리 겪어내는 것이 어떠한가 싶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떠오르는 데로 손이 가는 데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쓰이는 문장들을 수정하지도 않고 다시 읽어 보면서 정돈하지도 않는다. 생각하기가 진행되어 버리면 그 어떤 문장도 날 것이 아니라 매끄럽게 다듬어진 문장이 될 텐데 완벽함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욕심에 그림도 글도 시작부터 주저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자기 검열은 차차 해보자. 주저하게 되면 그림도 완성할 수 없고 글도 완성할 수가 없다. 지금은 문 앞에서 어떤 선택지를 고를까? 고민하기보다는 짧게 생각하고 생이 이끄는 데로 내맡기고 이끌려 가는 것이 눈앞을 가리고 있는 장막들을 뚫고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본다. 타인이 만들어 대는 인공적인 콘텐츠물에 이끌려 집단지성에 의해서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사고의 흐름으로 끌려가기보다는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믿는 것이다. 문 앞에 서성일 것인가? 지금 당장 어떤 문이든 열고 나아가볼 것인가? 인생의 끝에는 안락한 보석섬에 가 닿고 싶다.
언젠가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다가 넓고 밝은 길로 나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실개천도 이윽고 강을 만나고 드디어 바다를 만나는 진리를 감사하였습니다. 주춧돌에서부터 집을 그리는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드높은 삶을 ‘예비’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_신영복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