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서있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
삼각대의 삶
삼각대로 사는 삶.
한 친구는 나에게 "너를 보면 '삼각대' 같다."는 비유를 들었다. 항상 보면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유사한 말을 해왔다. 도 닦은 사람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평정심이 느껴지고 차분해서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바깥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나는 생존 본능적으로 혹은 학습된 장벽 테두리 안에서 깜쪽같이 티 안 나게 나의 불안과 두려움,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철저하게 감쳐 왔던 것이다. 종종 상사 앞에서 다르고, 뒤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온종일 가면을 쓰고 있었다.
삼각대 같다던 친구에게 "네가 나의 일부분만 봐서 그래. 나는 내면에 불안이 많은데 내가 감정적으로 불안하거나 슬플 땐 사람들을 잘 안 만나. 내가 지금 너를 만났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은 날이지 않을까 싶어.”라는 말을 했다. 친구는 "그래? 삼각대로 요렇게 저렇게 앞으로 움직이며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할지 쭈뼛쭈뼛할 때도 있구나. 어떤 식이든 왠지 네가 원하는 것들을 잘해나갈 것 같은 느낌이 있어."라고 하였다. 그런가 보다. 그 친구는 나와는 반대로 불안정한 감정과 불안, 걱정을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다 드러내놓고 사는 친구다. 그래서 친구에게 "너를 보면 나는 신기해. 어떻게 그렇게 다 드러내놓지? 너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들까지도 다 표현하거든. ‘나 불안해요.’ 티가 팍팍나. 그래서 아마도 너를 처음 보는 사람도 너랑 대화를 1분만 해도 너란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나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라. 그래서, 나는 불안한 감정이 생기면 오히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불안한 상태를 드러내놓고 시시껄렁한 대화들을 나누며 심취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전개가 되고 일적으로 퍼포먼스가 향상돼. 이런 내 모습을 몇 번 보고 나면 사람들이 편견이 없어지더라. 그래서, 나는 불안을 표출하는 게 그냥 나만의 생존 방식 같아. 너랑은 반대로."라고 했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표출되는 불안의 표면 위로 늘 호기심과 탐구를 통해 반짝반짝 아이디어를 뿜어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다방면에 재능과 지식이 깊은 친구다.
서로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어쩌다 만나면, 저 대화를 나누었던 이후로 그 친구는 내가 지금 삼각대로 안정적으로 서 있는지, 또는 삼각대를 요렇게 조렇게 움직이며 불안을 극복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만나자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아 보였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어떤 방식이든 각자의 생존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수련해 온 것들의 과정을 존경하며 다름을 존중한다. 지금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네가 아직까지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내 인생 첫 두 발 자전거와 두 번째 두 발 자전거
어렸을 때부터 두 발 자전거를 여러 번 타보려고 애썼었지만, 매번 두발이 너무 불안정하고 무서웠다. 어찌 두 바퀴 위에서 몸의 균형을 맞춘다는 말인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도 네발 자전거를 탔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자전거는 타기 힘들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살았었는데, 5-6년 전에 자전거를 권해서 용기를 내어 자전거를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말 잘 들어야지 싶었나 보다. 어찌 된 생각인지,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면서 연습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접이식 두 발 자전거를 질렀다. 일단 장비부터 사놓고 보자. 내 인생 첫 두 발 자전거를 주차장에서 홀로 아무의 도움도 없이 연습하면서 균형 잡는 연습을 했다. 나름 재미가 있었다. 절대 못 탈 것 같았던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다니!! 두 발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렇게 재미가 들리니 접이식에서 하이브리드 자전거까지 내 인생 두 번째 자전거를 질렀다. 접이식은 속도를 내서 멀리 가거나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타니 속도도 나고 안양에서 한강까지 왕복으로 50Km 되는 거리를 여러 번 다녀올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라보는 자연은 자동차를 타면서 바라보는 자연과 달랐다. 바로 내 다리 옆으로 풀 잎들이 스쳐 지나가고 좀 더 역동적이고 생경하게 자연의 움직임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강까지 여러 번 갔었는데, 자전거 정지할 때 어떻게 정지하는지를 잘 습득하지 못했어서 세 번을 아주 세게 무릎으로 땅을 내리찍었었는데 무릎에 엄청 큰 충격이 가해졌었나 보다. 그 이후로 무릎에 아주 작은 혹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_+ 그래도, 내 인생에서 자전거를 배운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새로운 경험은 이렇듯 좋다. 삼각대로 살아가는 나에게 두 발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수직 비와 대각선 비의 실타래
장맛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어떤 날은 비가 무섭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비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늘은 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비가 한 방향으로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바라보았다. 비가 바람에 작용한다면 모든 빗 줄기가 다 같은 방향으로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레이어의 비는 수직으로 내려오고, 어떤 레이어에 속한 비는 대각선으로 내려왔다. 수직과 대각선의 레이어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각각의 빗 줄기에도 유독 눈에 큰 빗 줄기로 보이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빗줄기는 너무 얇아서 집중해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았다.
빗 줄기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야겠다 생각했다. 4B와 8B를 섞어가면서 강약 조절을 하면서 선을 그어 나갔다. 수직으로 긋는 선과 대각선으로 긋는 선 사이에서 균형이 느껴졌다. 서로 꼬여지는 실타래처럼 서로가 서로를 받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비가 서로 발란스를 맞춰가며, 바람에 흔들리는 비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비 덕분에 속도를 늦추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비는 바람에 흔들리는 비 덕분에 꺾이지 않는 것이다. 내 안에도 두 발로 서있기에는 흔들흔들거렸던 자아가 있었기에 발 하나를 더 만들어서, '삼각대' 같은 자아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삶에서 균형과 발란스는 매우 핵심적인 키워드 같다. 워라밸처럼 일과 삶에서의 발란스뿐만 아니라, 생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의 발란스(균형)를 유지하려는 근육을 키워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