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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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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 Sep 28. 2020

13. 엄마없는 아이가 불쌍한 이유

무조건적인 사랑

하레는 유튜브를 보다가도, 놀이를 하다가도 가끔씩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마치 표정을 읽듯 골똘히 쳐다본다.

카메라 렌즈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쿼카처럼 맑고 호기심 가득한 귀여운 눈빛이다.

자기랑 몸과 몸을 맞대고 놀아주는 누군가가, 엄마같은 사람, 아니 '엄마'가 생겨서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쿼카 (출처: 호주관광청)


2019년 1월 한 달동안 나는 태어나서 이뤘던 것들 중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 - 하레에게 '사랑을 쏟아부어 빛을 되찾는 일'을 했다.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창조적인 일'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라는 말을 '여성을 가정안에 가두려는 사회적 음모'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생명과 젊음을 나누어주어 이 작은 인간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지.

하루하루 가슴이 벅차던 나날들이었다.

내 몸무게의 거의 반이 되는 아이를 매일 얼싸안고 다녔다.


내 배아파 낳은 자식도 아닌데 이 정도라면, 사랑하는 남자와 자기 배아파가며 자기를 꼭 닮은 아이를 낳은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가 자동차 밑에 깔리면 맨손으로 들어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하레엄마가 사라졌을 때, 아파트 단지 내 엄마들에게 "하레, 엄마 없어서 불쌍해서 어떡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염려해주는 말인 걸 알면서도 화가 나곤 했다.

다정한 배려의 말에도 건드려진 엄마에 대한 뿌리깊은 상처가 아팠다.

'그런 엄마'가 없어져서 불쌍하다고??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같은 아름다운 말에도 화가 났다.

나에게 엄마를 보낸 신은 변덕스런 복수와 증오의 신 야훼인 것 같았다.

시간이 더 흘러 내가 '갖지 못했던 엄마'와 '잃어버린 유년기'에 대해 제대로 애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감정적 방어기제가 무너져 내릴 때까지 나의 분노는 시시때때로 솟구쳐 오르곤 했다.


하지만 내가 하레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가져본 적 없었던 엄마의 존재와 역할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이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사랑할수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

이제는 스스럼없이 매달리고 무릎에 올라와 앉는 하레를 마음껏 안아주고 하레의 냄새를 맡고 하레의 존재를 그저 들이마시고 같이 있는 게 너무 예쁘고 좋았다.


'엄마 없는 아이는 불쌍하다'라고 하는 이유는 그런 '무조건적인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줄 존재'의 부재에 대한 연민일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엄마가 아이를 이용하고, 이기려 들고, 짓밟으면서도 복종과 존경을 강요한다면 차라리 그런 엄마는 없는편이 낫다,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하레는 아직 아기니까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내 가슴을 만지거나 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한 적도 있는데, 하레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사진 속 엄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라고 말은 하지만, 그냥 바나나를 '나나나'라고 말하듯, '엄마'를 '엄마'니까 '엄마'라고 부르지, 거기에 그 어떤 감정도 섞여있지 않은 느낌.

나도 엄마, 길가는 여자도 엄마.

'성인여성'을 다 '엄마'라고 불렀다.


하레가 차라리 나보다 낫다, 싶었다.

그렇게 당연히 싫어해도 될 대상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오랜 기간 안고 살며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하레는 그냥 단순하게 엄마를 싫어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






우리 사이에 애착이 점점 자라나며 떼를 쓰는 일이 많이 줄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그저 말투와 톤을 듣고 안심하는 건지, "공룡은 밥먹고 보는거야."라고 하면 더이상 떼쓰지 않고 앉아서 밥도 잘 먹는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고, 안되는 거 말고는 니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줄거야.
걱정하지마. 나는 언제나 널 사랑하고, 여기서 하레랑 있을거야.


그런 안정감과 안심을 주기 위해서 집안일을 하다가도 하레가 소리만 내도 재깍 달려간다.

자다가 일어나서 울때도, 하다못해 보고 있던 유튜브가 끝나서 '이거!'하면서 소리를 지를때도 얼른 달려가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교감해준다.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하레는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으면서 소리를 마구 지르면서 통통 튀어 나왔다.

배웅하던 원장 선생님이 "세상에, 이런 아들이 어디있어?"라고 웃으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하레는 사람의 손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 성향일수도 있겠지만, 엄마한테 못받아봐서 그런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스킨십과 애정표현을 자주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건지, 하루는 하레가 유튜브를 보는 동안 쇼파 옆에 앉아있는데, 팔을 내 허리 사이로 끼우더니 손으로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주었다.

심쿵했다.

티비 볼때도 혼자 놔두지 않고, 계속 손을 토닥토닥하고 뽀뽀하고 쓰다듬어주는데, 반응이 없어서 '과연 효과는 있을까' 싶었지만, 그냥 나의 애정을 '표현'해주고 싶었다.

하레도 다 느끼고, 알고 있었구나. 


어린이집에 오고가는 길에, 놀면서도, 재우기 전에도 더 적극적으로 "하레야, 사랑해" "고모가 우리 하레를 좋아하지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하레"같은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기저귀를 갈고 있는 데,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발버둥을 마구 치면서 내 가슴을 발로 찼다.

별로 아프진 않았지만 "아야!! 엉엉엉"하고 우는 흉내를 내면서 "호~해주세요"라고 하자, 즉시 행동을 멈추고 다정하게 호~해주었다.






영화 <시> 의 한 장면 (사진출처: 한겨레21)

할머니: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게 뭐였지?

손자: 종욱이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할머니: 그래.

이창동감독의 영화 <시>



나는 전혀 가정주부, 살림 체질이 아니다.

바깥에서 바쁘게 일을 하는 편이 더 좋다. 

밥은 주로 밖에서 사먹고 집에는 '고양이 사료'밖에 없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내가 장을 보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에게 밥을 해서 먹이고, 뭘 먹일까 고민하는 나날들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즐겁고 재미있었다.


냉동실에 있던 목살을 가지고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챠슈덮밥'을 해보기로 했다.

레시피 동영상을 보니 쉽고, 맛있을 것 같아서.

레시피를 받아적고 몇 번이나 읽으면서 재료를 준비하고 따라했다.


만드는동안 뭐하는지 궁금해하는 하레에게도 "이거 고기야. 맘마해서 아빠랑 같이 먹자!"라고 말하고, 고기를 굽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틈틈이 보여 주었다.

혼자서 딸꾹질을 하느라 힘들었는지 칭얼거려서 업어주기도 하면서, 하레아빠가 퇴근해서 올 시간에 맞춰서 요리를 했다.

레시피에 '몽근하게 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몽근함'이 도대체 얼만큼인지 모르겠어서 내 마음이 같이 몽근하게 졸아들었다.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는데, 이 좋은 목살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데...

내 입맛엔 좀 짠 것 같았고, '이건 챠슈가 아니라 그냥 간장 불고기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레아빠도, 하레도 엄청 잘 먹었다.

둘 다 두 그릇씩 먹었다.


하레가 숟가락을 들고 밥을 아구아구 퍼먹고, 고기를 손으로 집어서 막 먹는데 너무 예뻤다.

지금까지 "먹는거만 봐도 배부른 게 어딨어. 내가 먹어야 배가 부르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먹는 거만 봐도 배가 불렀다.

이렇게 잘 먹어주니 마음을 몽근하게 졸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에 자신이 완벽하게 확신을 갖고 도움을 청하거나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아의 성장과 탐구력, 학습 능력 향상에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한다.

'안전기지'.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늘 끝없는 불안 속, 어깨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채 긴장 속에서 살았다.


'안전기지'가 되어주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파괴하곤 했으니까.

지금 나의 안전기지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이며, 하레에게 내가 그 '안전기지'가 되어주려고 최선은 다하고 있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레랑 하루종일 함께 있는 날엔 조금 지치기도 한다.

혼자서 낯선 도시에서 연고도 없이,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관심을 많이 요하는 아이랑 하루종일 있는 건 누구라도 쉬운 일이 아니야, 라고 되뇌이며 나를 너무 밀어 붙이지 않으려 했다.

하레가 혼자 놀때는 나도 좀 쉬기도 하고, 지칠 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했다.

춤을 추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오래 하레를 돌봐야 하니, 너무 잘하려고 기를 쓰거나, 집안을 티끌 하나 없이 유지하려고 하는 과욕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 하지만 꼭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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