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첫 번째 기록
2019년 1월 8일 화요일
갑자기 불안감이, 외로움이, 두려움이 고개를 치켜들면 이 순간마저도 얼마나 감사한가 되새긴다. 내가 독일에 가도 될까 고민했던 나날들, 부모님을 설득하려 했던 노력들, 독일 땅을 밟기 위해 일했던 지난 1년을 생각한다면 이 모든 것이 전부 꿈같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벌써 익숙해진 내 방, 창 밖 거리, 흐린 하늘을 보면서 가끔은 처음인 시늉을 한다. '정말 내가 독일에 있는 것이 맞나? 꿈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여서 이곳에서도 나는 한국에서 보통 먹던 것을 먹고, 하던 고민을 한다. 내가 온 곳이 천국이 아님에도, 내 문제들을 단번에 격파해줄 곳이 아님에도 어째서 이런 행복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닿지 못할 곳이라며, 평생 할 수 없을 거라고 단념했던 것을 해내서 그런 것일까? 아마도 그래서 나는 숨 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조차 실체 없는 성취감에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자칫 말라버리면 돌아설 곳이 없다.
독일 땅을 밟은 지도 두 달 하고도 팔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야릇한 성취감은 이제 말라가고 나는 다시 '어학'과 '입시'라는 이름의 모래시계 앞에서 나를 재고 시험해야 한다. 바다를 건너 대륙을 넘는 자유를 만끽하던 나를 긴장의 끈으로 묶어야 할 때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나 자신에게 물질을 초월하는 자유를 주기 위함이다.
이 년 전 45일간의 여행에서 맛봤던 자유에서 비롯하여 현재 어느 길목에 섰고 무엇을 꿈꾸나. 실패의 끝에서 절망을 기꺼이 등에 업고 홀로 나는 떠났다. 매 순간 갈림길에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대한 일까지 스스로, 오직 나를 위해 결정해야 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던 나는 마침내 선택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한없이 자유로웠다. 비로소 행복했다.
지금에 와서 보는 당시의 자유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러나 작은 씨앗이 싹터 나무가 되고 나무가 산과 대지를 이루듯 그 보잘것없는 경험이 위대한 씨앗임을 믿는다. 비가 오면 거름이 될 것이고, 바람이 불면 또한 그 씨를 널리 퍼트려줄 것임을 믿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울창한 숲이 되리라.
내가 쥐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한낱 꿈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숲이 되기를 바라며 아끼느라 펼쳐만 봤던 이 노트에 일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