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시든다

'폭싹 속앗수다' 중에서

by 디노

사람은 시든다. 물을 주지 않아도, 비가 내리지 않아도 풀들은 좀처럼 시들지 않지만, 사람은 아주 조용히 시들어 간다. 거대한 사건 때문도 아니고 거창한 실패나 큰상처 때문만도 아니다.


아주 작은 일들, 남이 무심코 던진 차가운 말, 한 번의 무시, 한 번의 포기. 그것들이 스며들어 우리 마음속 한 모퉁이를 서서히 마르게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매일 조금씩 시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열정을 품었던 청춘은 어느새 '적당히'를 배우고, 꿈을 좇던 우리는 '타협'을 배우고, 친구와의 작은 대화에서도 큰 웃음을 터뜨리던 얼굴은 '미소'로 눌러 담는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세상의 무게를 받아들인다. 가벼웠던 어릴 적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눌린다.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아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면 비록 눈에 보이는 화려함은 줄어들지 몰라도, 그 속에 더 깊고 단단한 생명이 깃든다.


화려했던 순간이 지나고, 빛나던 꿈이 옅어질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아직 따뜻한 숨을 쉬고, 아직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직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것이 바로, 시들지 않았다는 증거다.


시든다는 것은 멈추는 게 아니고 깊어지는 것이다.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성향으로 때로는 너무 조용히 살아서, 스스로 살아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살아 있다면,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다.


시든 건 부끄러운 게 아니고 나약함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오며 상처도 받고, 무너지고, 아파했지만, 그 모든 시간은 우리를 더 단단하고 깊은 존재로 만들었다.


꽃은 시들지만 나무는 살아남는다. 오늘 조금 더 느리게 가도 괜찮고, 오늘 조금 더 초라해 보여도 괜찮다. 우리는 결국, 다시 싱싱하게 피어날 것이다.


사람이 시든다. 하지만, 사람은 시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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