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뒤 내실도 조금만 더 챙겼다면
무수히 일렁이는 촛불들 사이에서의 아름다운 클래식 공연. <캔들라이트-쇼팽> 콘서트를 찾았다.
촛불 속에서 공연을 한다는 메인 비주얼만 동일할 뿐 매 공연마다 연주자도, 레퍼토리도 달라진다. 이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프랜차이즈이다.
요즘 휴일에 근교 카페는 많이 갔고, 전시회도 자주 보러 다녔고. 뭐 좀 새로운 거 없나? 싶어 찾게 된 것.
<캔들라이트> 공연은 전부터 유명했는데 한 번쯤은 경험해보자 싶었다. 유튜브로만 가끔 듣던 클래식, 오랜만에 공연 실황을 접하고도 싶었고.
팬시한 인스타그램용 콘서트라고 여기고 찾은 것은 사실이나, 정말 거기에 그쳤다. 화려하게 소개한 이력과는 달리 클래식이 낯선 귀에도 더듬거리는 피아노 음정이 들렸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유명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스타는 정말 다르긴 달랐다.
하지만 가장 아쉬웠던 공연의 퀄리티를 살짝 떠나,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있었다.
현대 클래식은 거장들의 웬만한 실황이 거의 녹음되어 있고 요즘은 영상으로 접하기도 비교적 쉬워졌다.
클래식이 낯선 대중일수록 오히려 그들의 가장 엄선된 연주만 접하게 된다. 지나가는 귀로 들었는데 그게 그 업계의 최고점인 셈.
에뛰드 발라드 소나타 교향곡, 구분이 잘 와 닿지 않는 곡들과 번호로 알려져 제목도 낯선 음악들.
관객이 필요하지만 대중적 스타가 극히 적은 업계.
청중을 만나고 싶은 클래식 공연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캔들라이트>가 클래식 공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공연이 선사하는 시각적 경험
여타 클래식 공연과 <캔들라이트>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공연 네이밍이다.
사실 이 네이밍이 차이점의 처음과 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연의 주인공은 연주자도 아니고, 사실은 공연 레퍼토리도 아니다.
바로 끝없이 일렁이는 촛불이다.
일반적 클래식 연주회는 ㅇㅇㅇ 독주회 / *** 필하모닉 공연 등으로 연주자를 강조한다. 유명 팝스타의 콘서트명과 비슷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공연들이 바로 영화음악 콘서트들이다. 지브리, 라라랜드, 디즈니 등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유명한 영화음악들이 콘서트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화면과 함께했던 음악을 보다 온전히 귀로 즐기는 경험. 귀로 들으며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을 영화음악 콘서트들이 선사했다. 여기까지는 청각적 경험에 머무르거나, 의도적으로 시각적 요소를 줄여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한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캔들라이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클래식 공연장을, 그리고 공연 실황까지도 개개인의 인스타그램 포토존으로 만들어 준 것. 수백 수천 개의 촛불들이 끊임없이 일렁이며 공연을 관람하는 '나'의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원래도 모든 전시회나 공연장은 로비에 포토존이 있지 않느냐고?
다르다.
<캔들라이트>는 앙코르곡 연주 시 영상, 사진촬영이 허용된다고 안내방송되는 획기적 공연이다. 마음만 먹으면 연주 실황을 배경으로 셀피를 남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관객의 자유로운 활동이 허용되는 배리어프리 공연은 아직 매우 드물다.
그리고 콘서트홀 공연은 공연 종료 후 관객과 인사하는 커튼콜조차 사진 촬영이 금지인 경우도 있기에 이 획기적 허용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프로그램북을 구하거나 셋 리스트를 보며 관객이 알아서 예습하는 기존 공연과 달리 연주자가 중간중간 스스로 선사하는 곡의 도슨트도 흥미로웠음은 물론이다. 여타 공연이 자유여행이라면, <캔들라이트>는 옆에서 떠먹여 주는 가이드 투어 같았다고나 할까. 관객의 심리적 접근성 측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드물었는데, 참.
이 공연으로 여러분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하세요!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미디어아트 전시를 이야기하려 한다. 우습지만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아직까지 심리적 거부감이 있는 장르이다.
전시를 찾는 것은 태블릿에서 확대한 이미지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진짜'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던가? 화폭의 장엄함에 압도되거나 집요하리만치 세밀한 터치를 눈으로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나? 하는 원인 모를 근본주의.
이래서 나도 이제 기성세대인가 봐-자조적인 척 말하지만 사실 부끄러움은 없다.
하지만 미디어아트 전시는 한국의 전시회 문화를 상당히 많이 바꾸어 놓았다. 바로 작금의 세대가 이전보다도 더욱더 '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문화 소비가 새로운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요즘의 문화 소비는 '나'를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미식/관람/여행 등 어떠한 경험이 단순한 체험이라기보다 관람객을 돋보이게 할 새로운 스튜디오로서 역할을 바꾸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 <캔들라이트>의 가장 큰 의의겠다. 클래식은 아니라도 공연이나 전시 자주 찾던 나지만, 선뜻 손 안 가던 장르를 접할 때는 가장 대중적 작곡가, 가장 대중적 공연을 찾지 않았는가?
활발한 논쟁을 낳았던 미디어아트 전시들은 그 자체로 소규모 미술관들의 전시 기회를 늘리고 더 다양한 관객-대중-들이 전시회를 찾게 만들었다. (논쟁이 활발하다는 자체가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초창기의 원화를 고화질 이미지로 바꾸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발전하여 관객에게 새로운 시대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클래식! 미술 전시회! 이런 분야라서 다소 근본주의적으로 흘렀지만. 사실 해마다 크고 작은 논쟁을 불러오는 워터밤이나 흠뻑쇼 같은 경우는-그러니까 해당 공연이 진정한 음악 페스티벌인지에 대해-큰 불만이 없다. 몇 년간 지켜본 결과 근본을 추구하는 음악 페스티벌과 워터밤 등은 타겟층이 아예 다르다. 대형 배급사의 블록버스터 영화와 인디영화의 관객층이 다른 것과도 비슷하다. 타겟층이 다르면 접근법도 다르게 가는 것이 맞다. 대중 예술에서 '진짜'가 아니다, 이런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요즘의 생각이다.
클래식이나 미술 등 진입장벽 있는 장르들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접점이 매우 소중하다. <캔들라이트> 또한 클래식에서의 미디어아트 전시 같은 공연이 아닐까. 고고하게 관객을 기다리는 공연들도 좋지만, 멈칫대는 옆에서 손 끌어주며 다정하게 안내하는 경험 또한 귀하다. 각 잡고 공부해 가기는 부담스럽고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분위기 있는 저녁을 보내고 싶을 때. 가볍게 찾을 수 있고 근사한 사진도 남길 수 있는 그런 공연.
어떤 때보다도 비주얼이 중요해진 시대. 대 인스타그램 시대의 클래식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캔들라이트>는 그에 대한 작은 이정표를 제시한다.
다만 비주얼에 상응하도록 연주자의 퀄리티만 조금(많이) 더 높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