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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Dec 11. 2023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 혼자 알아서 행복해지기





당근마켓 어플에 스타벅스 다이어리 판매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연말이다.

2023년이 정말 끝나 간다. 올해 무엇을 했나-곰곰 짚어 보면.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그 생활을 무리 없이 꾸려 나가기에 매진했다.

열심히라면 어폐가 있으나 큰 잡음 없이 지내기 위해-나름의 노력을 했다. 전업 한의사(?)에서 반은 한의사, 반은 주부로 겸직을 시작했다고나 할까. 주부로서의 업무를 익히고 수행하는 것이 새로운 역량 강화 분야로 추가되었다.

그리고 추나 전문 한의원에서 근무하며 손목의 건강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간의 숙원이었던 경추 쓰러스트(우두둑 소리 나게 목을 꺾어주는 치료법을 말한다)를 마스터했다.

또 한 번 생각한다. 결국 정말 문제 되는 장애물은 스스로 직접 매진해 해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새로운 목표의 등장

2023년 10월 이후 큰 과제가 생겼다. 바로 '나 혼자 알아서 행복해지기'이다.

문장은 짧지만 그 안에 목표가 두 가지나 있다.

① 행복해지되

② 혼자서.

누구의 도움이나 무언가의 작용이 아니라 알아서 행복감을 자아내는 것. 그러려면 먼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아직도 머리와 마음이 인식하는 행복의 정의는 서로 다르다.



꽤 오랫동안 나에게 행복이란

'목표를 달성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얻는 고조된 감정'

정도의 개념이었다. 꼭 그러한 감정을 행복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던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시험 점수가 오르면, 대학에 잘 가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여행을 가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외모가 멋져지면, 살이 빠지면 등등..

언제나 그 당시의 목표를 이루면, 나의 불안과 불만은 사라지며 그 빈자리는 행복감으로 채워지리라 믿어 왔었다. 지금까지 사회적 가치를 성실하게 이루기를 독려하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일반적 가치와는 다른 특이한 목표가 있어서 괴로운 적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이 나의 목표를 격려해 주었다. 또 노력하면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사회적 목표를 이루어도 그건 말 그대로 사회적 목표일 뿐, 개인적 행복감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몰랐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나중에 더 큰 목표를 이루면 행복감이 조금이라도 더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행복하기 목표라면 '좋은 남자를 만나 무탈하게 결혼하기'였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성공이다


남편이 이 글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도 일상이 고조된 행복감으로 가득 찰 수는 없다.

다시 보면 너무 당연한 결론을 30대 중반이 되고서야 새삼스레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목표 달성이나 새로운 경험으로 얻는 기쁨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그대로였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자연스럽게-그렇다면 그 다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다른 목표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제 결혼했으니까 집 사기, 그러려면 부동산 공부하기,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집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번역 일 자리 잡기 등.






스위스 인터라켄 패러글라이딩 체험



8월 말에 추나 전문 한의원을 퇴사하기 전까지는 9월에 스위스로 여행 가서 즐겁게 놀기가 목표였다.

그다음에는 10월에 필리핀 보홀에서 즐겁게 놀기.






보홀에서 마신 칵테일



그러다 보홀 여행까지 다녀오고 나니 행복을 가져다줄 단기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집이라는 건 목표로 삼는다고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일상을 채워 줄 나의 콘텐츠함이 붕 떠 버렸다.



일할 때는 쉬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계속 쉬니까 삶이 무료해졌다. 그래서 즐거운 경험에 시간과 돈을 썼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경험에 영원히 시간과 돈을 쓸 수는 없다. 심지어 경험으로 얻는 신선함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낮아진다.

경험의 사이에는 언제나 일상이 자리한다. 아니, 사실은 모든 순간이 일상이다. 일상의 재미와 행복은 어떻게 얻지?

지금은 주중에 짧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다시 잡아 두었다. 내년 1월부터 근무 시작이다. 다음 달에는 매 순간이 행복해질까?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이 한두 달 사이 어렵게, 아주 어렵게 행복이란 그러한 고조된 감정 상태가 아니며, 불행하지 않기만 해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는 일을 시작한다고, 아니면 쉰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마음으로 인정하지는 못했지만-지금까지의 삶을 근거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일상의 재미란 안타깝게도 내가 알아서 찾아야 하는 것.

과정을 즐기라는 말은 그저 미생들을 격려하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인생은 온통 과정뿐이라 그를 즐기지 못하면  삶의 매 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부동산 공부도, 번역 일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달성하면 기쁨이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불행에 처하지 않게 방어하는 목적에 더 가까울 것이다.막연한 미래로 모든 행복을 넘기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향유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물욕을 조금 더 줄였다. 바로 앞에 집을 사고 싶다고 썼으면서 하는 말치고는 앞뒤가 안 맞는데.

사실 '물건'도 일상 속에서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나만의 목표 아니었을까. 이제 어떠한 물건을 손에 넣는다고 딱히 새로운 행복감이 밀려들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하는가


혼자서도 꾸준히 재미를 느낄 무언가-보상이 없더라도-를 찾아 나서는 중이다. 그걸 사람들은 취미라고 부른다. 취미야말로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에.





수영 가방. 물에서 아침을 연다



반년 남짓 주 2~3회씩 수영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이면 어엿한 취미로 삼아도 되겠다.

여름에는 푸른 물에서 팔다리를 저으며 나아가는 느낌이 좋았다. 요즘은 차가운 수영장 공기를 헤치고 수영장 물에 뛰어들면 따뜻해지는 것, 수영을 끝내고 온탕에 몸을 담그는 것, 그리고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좋다.






자수천이 너무 꼬깃꼬깃하네



한두 달 사이 새롭게 시작한 것은 프랑스 자수이다. 자수 또한 '과정'의 미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취미 같다. 톡, 톡 바늘이 자수천을 뚫을 때 묘한 쾌감이 있다.

일할 때도 침을 놓더니 일하지 않으면 바늘을 꽂는구나 싶어 재미있다. 자수로 조그마한 문양을 완성하면 귀엽기도 하고. 스티치가 짧으니 과정과 결과가 빠르게 교차한다.

어쨌든, 과정을 보다 즐기려는 나름의 지난한 여정 중이다. 취미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씩 느껴 가고도 있고.



오늘은 일부러 수기 일기를 선택해 썼다. 12월이니 다이어리 구매 시즌인데, 야심 차게 산 다이어리를 올해 6장밖에 쓰지 못했거든.






쓸 곳이 한없이 많은 다이어리

글씨는 손으로 써야만 두뇌가 깨끗해지는 것 같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때의 나는 항상 머리에 잔잔한 노이즈가 끼어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글은 완성한 이후 타이핑하여 브런치에 게재할 것이다. 다만 모니터 앞에서 손과 눈이 정처 없이 헤매지는 않겠지.

쓴다, 생각하면 이것도 머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자 즐겁게 나를 채우는 취미이다. 내가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예고편 : 독서노트 글감이 밀려 있다

매 편 나눠 쓸 수가 없다. 몰아서 써야지





<나, 프랜 리보위츠> 프랜 리보위츠

<3부작> 욘 포세

<가진 돈은 몽땅 써라> 호리에 다카후미

<신경 끊기의 기술> 마크 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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