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도영 Apr 19. 2016

#10 독일 빌레펠트, 마리의 열정

보드를 즐긴다는 건?

 내가 쾰른에 갔을 때, 줄리아와 친한 마리아는 줄리아에게 연락을 해서 빌레펠트도 찾아오라고 말을 했다. 다음 여행지인 오스나브뤼크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되니 가는 길에 와서 지내자는 거였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대회에서도 초대를 받았었다. 무섭게 생긴 외모탓에 꺼려졌던 게 사실이지만, 여러 번 초대한 탓에 망설이면서도 찾아갔다.


 마리 집에 도착해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난 마리가 얼마나 보드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사진가인 마리는 계단에서부터 벽을 자신이 찍은 보더들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방에 들어가도 사진으로 가득 차있었다. 작은 롱보드 전시전 같았다. 이게, 보더의 집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나는 마리가 만든 Spin 잡지를 발견했다. 아직 발행은 안 했지만, 이미 모든 형태를 갖춘 잡지였다. 우리나라 와는 다르게 독일에는 롱보드 잡지가 많았다. 스케이트보드 샵에 들어가도 몇 종류의 잡지를 볼 수 있었다. 마리는 특별히 여자를 위한 잡지를 만들었는데 큰 행사들, 기본 정보, 트릭 팁 노하우, 유명 여성 라이더들의 인터뷰 등이 실려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하루에 2시간씩은 꼭 책을 읽던 내가 여행을 떠나 책을 못 읽어 답답했던 탓인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글과 롱보드가 함께 섞여있는 매체여서였을까? 한 번 읽기 시작한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한국 여성 라이더들 ( 효주, 솔비 ) 의 인터뷰를 도왔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라이더들의 인터뷰 글을 보니 재밌었다. 삶에 재미라는 가치가 더해져 더 빛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읽는 나조차 행복해졌다. 아직 수정할 게 있다며 발행하지는 않았지만, 발행되면 꼭 한 권 사겠다고 말했다.



 마리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었다. 보드를 즐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보드를 타는 것이다. 보드를 한 번이라도 타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보드를 탄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실력이 좋지 않아도, 많은 기술을 하지 않아도, 그저 가볍게 타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준다.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마리도 마찬가지로 보드 타는 것을 즐긴다. 잘타면 좋겠지만, 꼭 잘타야 하는건 아니다. 초보때는 초보의 재미가 있는 것이고, 잘 타면 또 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재미가 더 크다, 라고 말하긴 힘들다. 다를 뿐이지 모두 다 재미있기에.


 그리고 나의 즐거움이 혼자만의 즐거움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다같이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내 즐거움이 사회적으로 의미까지 가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아닐까? 그리고 그 즐거움이 꼭 보드를 타는 게 아니어도 괜찮지 않나? 다 열정적으로 보드를 탈 필요는 없다. 보드를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각자 자신이 가진 장점을 활용한다면, 분명 색다른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리는 사진을 좋아하고, 그래픽 관련 공부를 한다. 여자 보더로서의 느낀 점을 더해 잡지를 만들 생각을 했다. 롱보드를 시작하는 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나 역시, 롱보드 댄싱을 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즐겁게 타고, 댄싱씬을 키우기 위해 롱보드 댄싱 랩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다. ( 지금은 신경 못쓰고 있지만, 여행을 하면서 롱보드 댄싱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생기지 않을까? )



 또 유럽의 한 사진 좋아하는 보더는 함께 보드 탄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사진첩을 만들어냈다. 사진첩을 보면서 내가 아는 보더들이 한가득 담겨있어서 재미있었다. 이런 사진첩은 함께 아는 지인들끼리의 추억을 남기는 데 정말 좋은 것 같다.


 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이 씬이 난 좋다. 눈부신 열정으로 가득 찬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니. 나 역시 열정이 생기는 기분이다.


 열정적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열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어려울 지는 몰라도 더 좋은 방법은 내가 열정적이 되어 다른 이들을 열정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마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 셈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열정적인 사람인가? 혹은 타인의 열정을 식히는 그런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답은 정해져있다고 가볍게 말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매거진의 이전글 #9 독일 여행의 첫 도시, 쾰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