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우리는 왜 히말라야로 떠났을까?
포카라 Pokhara -> 울레리 Ulleri
날이 밝았다. 이제 진짜 디- 데이
포카라에서 곧장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고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한 다음,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은 산 중턱을 따라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츠레가 보이기 시작한다.
안나푸르나는 4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우리가 본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runa south, 7219m)는 8천 미터가 되지 않는 산이었다. 처음에 저 멀리 눈 덮인 산을 발견하고서 한참 신기해하는데 네팔리들은 저건 높은 것도 아니라며.. 놀라는 우리를 보고 재미있어했다ㅋㅋㅋ
마차푸츠레(Machhapuchchhre, 6997m)는 생선 꼬리(fish tail)이라는 뜻으로 산 봉우리가 생선꼬리처럼 생겨서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매우 위험하기도 하고 시바신에게 봉헌된 신성한 산이라 입산이 불가능하다.
드디어 차에서 내려서 등산을 시작할 시간!
운전기사 아저씨와 우리 짐 들어주는 카카까지 다 같이 사진을 남겨봤다.
이때까지도 난 아무 생각이 없었지 ㅋㅋㅋㅋㅋ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에 다말라는 안내소에 들러서 입장료를 내고 서류를 작성했다.
문서와 관련한 것은 모두 다말라가 알아서 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마지막에 여행이 끝나고 각자의 입장권 등을 한 번에 받았다.
길 중간에 있는 작은 집들, 그리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빨래가 자연의 푸른색과 대조되어 눈길을 끈다.
바닥에 판판히 깔려있는 돌들이 고즈넉한 마을에 운치를 더한다.
등산객들이 지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길에 나와 '나마스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쪼꼬렛을 달라고 하기도 한다. 길가다가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뭐라도 줄걸 그랬다는 계속 생각이 들었다 ㅠㅠ
초반의 길은 경사가 심하거나 힘든 길은 아니었지만,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 종종 차가 지나가면서 먼지를 풀풀 날렸다.
조금 올라가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네팔의 일상식 달밧(Dal bhat).
커다란 쟁반에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주고, 우리나라의 국처럼 생긴 '달'을 담아줬다.
달은 콩 종류로 만든 국이었는데, 한 끼만 먹어도 힘이 불쑥불쑥 난다고 한다. 그래서 ‘Dal bhat power 24 hours’ 라는 말도 있단다. 실제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옷에 프린팅 된 저 문구를 발견하기도 했다. ㅋㅋㅋ
식당 아주머니는 부족한 반찬은 없냐고 물으시며 밥과 반찬들을 넉넉하게 더 가져다주셨다.
밥을 먹고, 물을 채우고, 엄마는 다리에 테이핑도 하면서 재정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산행 시작.
근데 저기요... 누가 워밍업의 의미를 다시 설명해주실래요?
누가 이런 길을 워밍업으로 걸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을 먹고 나자 히말라야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는 중천에 쨍쨍하게 떠서는 좋다고 방글대고 있고, 계단은 하늘까지 이어져있다. 이러다가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레알 트루 미친듯한 경사의 계단이 하늘까지 이어져있었다.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ㅋㅋㅋ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 산을 왜 오르는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고?
어차피 내려갈 것 왜 올라왔는가 등의 생각이 들려 하다가도 눈 앞의 계단 앞에서 모든 상념이 머릿속에 싹 사라졌다. 나는 가야 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디뎌야 하는 계단만 보며 걸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ㅋㅋㅋㅋ
동생은 내가 지금 왜 여기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냥 포카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다 엄청 힘들었다.
다리를 건너다가 풍경도 너무 이뻤지만, 조금 쉬어갈 요령으로 동영상까지 찍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나는 내가 가장 걱정이 됐어.....
트레킹을 하는 동안 다말라는 하늘과 날씨를 체크하면서 카카와 일정을 상의하는 것 같았다.
낮에 이렇게 햇빛이 쨍쨍하면 곧 비가 시원하게 내릴 테고 그러면, 우리의 길이 더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날씨에 맞춰서 우리의 속도를 조절했다.
이날 그들은 오후 4~5시쯤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그 안에 목적지인 울레리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비는 생각보다 빨리 내리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찍었던 폭포를 지나고부터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리고 다말라가 물었다. "너 계속 갈 수 있겠어?, 이제 여기를 지나면 오늘은 포카라로 돌아갈 수 없거든"
하하하하하하
이때는 사진을 찍을 생각을 1도 하지 못했는데, 아빠가 여기저기서 사진을 남겨놓으셨다. ㅋㅋㅋ
덜덜덜 손 떨리는 저 계단의 경사를 보라...
저 밑에서 숨을 돌리며 이야기하고 있는 나와 스파이더맨 우비를 입고 있는 다말라.
빨갛게 터질 것 같은 내 얼굴에서 힘들어 죽겠는 표정이 보인다. ^^
우비를 입고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올라가는데 빗방울이 굵어진다.
그래서 길 옆에 있는 식당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 안에는 이미 중국어를 사용하는 몇몇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양철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돌계단에 부딛치는 빗방울 소리를 서라운드 음향으로 들으며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자니 팔다리에 묵은 피로가 같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비는 30여 분간 거세게 내렸고 우리는 아주 꿀 같은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외부인이 들어와 구매도 하지 않고 시끄럽게 이야기만 하는 데에도 식당 주인은 불편한 기색을 1도 내비치지 않았다. 친절한 네팔리-
비가 좀 잠잠해지자 다시 길을 나섰다.
다들 어디선가 비를 피해 있다 나왔는지 사람들이 한 무더기씩 나타나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0분 쉬었더니 기운이 솟아난다! (그래도 계단은 여전히 가파르다...)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울레리에 도착!!!!!!!!!!!!!!!!!!!!
마냥 기쁜 엄마 아빠 ㅋㅋㅋㅋㅋ진짜 곳곳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으셨다.
그리고 동생은 이제 왜 산을 올라야하는지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한차례 거세게 내린 비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줬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서 숙소를 향해 가는 길에 저 멀리 힘출리(Himchuli, 6441m) 산이 보인다.
힘출리는 그리 유명한 산도 아니었고, 심지어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고된 산행이 끝났다는 기쁨과 드디어 설산이 보인다는 반가움에 우리는 한 명씩 기념사진을 찍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울레리에서 우리의 숙소였던 나이스 뷰 롯지 (Nice view lodge)
한차례 비가 내려서 롯지는 정전상태였지만 뜨거운 물은 아주 잘 나왔다. 화장실 한쪽에 손전등을 켜놓고 핫 샤워를 했다.
와.. 이거면 됐다!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다ㅋㅋㅋㅋ 여름이었는데도 산 위의 저녁은 꽤나 쌀쌀했다.
북엇국과 된장국을 곁들어 저녁을 먹고 티타임을 하며 오늘의 산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부터는 숲 속으로 들어가고, 계단도 많이 없으니 괜찮을거야ㅎㅎㅎ”
....믿어도 됩니까 ㅋㅋㅋ
와이파이가 안터지니 방에 들어가도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도록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네팔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 다말라와 카카 아저씨의 이야기, 국제개발협력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말라가 역사와 철학 등등의 분야에 관심도 많았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이후로도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히말라야에서 가장 무시했던 첫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