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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리 Feb 22. 2024

동창부부, 한국에서 캐나다로

초등학교 동창 부부의 파란만장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서막 



나의 첫 밸런타인데이


벌써 캐나다에 온 지 12년이 되었다. 

2012년 여름, 당시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남편과 나는 김포의 작은 동네에서 함께 자랐다. 1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1반밖에 없었던 우리 학교에서 우리는 초등학교 6년을 함께 보내며 반장, 부반장을 번갈아 했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 초등학교 은사님을 함께 만나 뵈었는데, "허허, 반장 부반장이 결혼을 하네"라며 웃으셨다. 


지금도 남편은 주장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를 좋아했다고. 사연인즉, 앞서 언급했듯 우리 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반뿐인 학교였다. 나에게 3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데 당시 중학생이던 언니와 언니 친구들은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 선물을 주고받기 바빴다. 언니들을 보며 나도 졸업 전에 누군가에게 초콜릿 한번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옆동네 큰 문방구까지 친히 버스를 타고 가서 포장지와 초콜릿들을 샀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부터 손이 무지하게 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남편과 단둘이 식사를 할 때도 한 4인분 정도의 식사량을 준비한다) 3단의 노란 선물상자를 사서 그 안을 초콜릿으로 채우고, 누구에게 줄지는 그다음에 고민하였다. 그렇다. 대상을 딱히 정했던 것은 아니고, 나는 그저 주는 행위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음.. 누가 좋을까?' 그리고 지금의 남편이 당첨되었다. 왜냐하면 남편은 장난기가 많기는 해도 매우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날 학교에 조금 일찍 가서 남편의 사물함에 그 작지도 않은 노란 3단 초콜릿박스를 나름 몰래 넣어두었다. 그리고 남편이 사물함을 언제 여는지 내내 주시했다. 남편은 다음 수업준비를 위해 사물함을 열었다가 매우 당황하며 사물함 문을 급히 닫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뭔가 좋으면서도 부끄러워하며 당황하는 표정을 나는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참, 한국에는 화이트데이 문화가 있지 않은가.

(캐나다에 오래 살면서 화이트데이가 없어서 조금 아쉽다. 이곳 사람들은 밸런타인데이 때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에게도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집에 혼자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가 보니 지금 남편의 어머니셨다. 그리고 그 뒤에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 피지컬의 중학교 1학년 남편이 서있었다. 부끄러워 나름 뒤에 숨은 것 같은데 숨겨지지 않았다. 남편은 초등학교 때부터 상급생 형들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키다리였다. 



그날은 3월 14일 화이트데이였다. 지금의 시어머니의 손에는 사탕바구니가 들려져 있었다. 수줍음 많은 남편을 대신해 나에게 사탕바구니로 보답을 해주셨던 것이다. 지금도 남편과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티격태격한다. 네가 먼저 좋아했느니 아니라느니 하면서. 



참치와 고백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우리는 남중, 여중으로 각각 배정을 받았다. 그리고 동창회에서도 한번 마주친 적 없이 20대 후반까지 각자의 삶을 살다가 2011년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해병대에서 의장대로 전 세계를 돌며 활동을 하다가 후에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 당시에 유행하던 싸이월드 메신저를 통해 15년 만에 연락이 닿았고, 운명처럼 마침 나의 쉬는 날에 시간이 맞아 다시 만났다. 우리는 함께 전시회에 갔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한 참치바에 갔다. 이름도 잊히지 않는 '이춘복참치'. 친구로서 사심 없이 대화하던 우리 둘에게 옆테이블에 있던 처음 보는 어떤 아저씨 두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중 한 아저씨가 한참 동안 나에게 지금의 남편에 대한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다. 자기 딸이 있으면 사위 삼고 싶다고. (음... 혹시 남편이 섭외한 분이셨나) 아마도 남편에게 뭔가 힘이 되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한 30분을 합석하시던 정체불명의 큐피드 아저씨는 어느새 사라지시고, 남편이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혜리야, 우리 한번 만나볼래?"



그 당시 마침(?) 연애를 쉬고 있던 나는 앞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면 결혼까지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연애를 아예 시작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돌직구로 고백을 하니, 그 모습이 용기 있고 뭔가 듬직하면서 멋져 보였다. 쿨함에는 쿨함으로, 그래서 나도 쿨하게 "그럴까?"라고 대답했다. 나는 사실 남편이 선한 사람인 것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TE급 결혼


연애초기 우리는 짧게 콧바람을 쐬고 남편이 차로 나를 데려다주는데,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차가 멈추는 느낌이 들어 깨어보니, 그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자기 집이란다... 그리고 다짜고짜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너무 편한 복장에 당시 나는 모델활동을 잠깐 했을 때라 머리도 알록달록 염색이 되어있어서 이런 모습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극구 나를 데리고 가서, 그렇게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다시 만나 뵙게 되었고, 그럼에도 그 모습까지도 예뻐해 주셔서 우리는 만남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결혼 후, 남편의 학업에 복귀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캐나다에 오게 된 이야기이다.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그동안의 파란만장한 캐나다 이민생활 이야기, 김치볶음밥 밖에 못 만들고 영어 한마디 못하던 내가 캐나다 파인다이닝의 수셰프가 되는 이야기, 요리와 디자인을 하며 디지털노매드를 꿈꾸는 현재의 이야기까지 천천히 풀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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