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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리 Mar 14. 2024

캐나다 밴프, 홍수의 추억

흐렸지만 강렬했던 우리의 여행



캐나다 에드먼턴은 참 추운 도시였다.

에드먼턴은 캐나다의 밴쿠버와 가까운 앨버타주의 주도로, 보통 가을인 9-10월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그다음 해 여름인 6월까지 눈이 온다. 그만큼 춥고 겨울이 길다. (물론 캐나다에는 에드먼턴보다 더 심하게 추운 지역도 많이 있다) 길에는 길토끼들이 한국의 길고양이처럼 흔하게 돌아다닌다. 내가 에드먼턴에 가서 제일 처음 장만한 것이 눈 오는 날 신을 미끄러지지 않는 튼튼한 겨울롱부츠였다. 겨울에는 눈이 정말 무릎까지 온다. 그리고 건조하기는 얼마나 건조한지, 원래도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난 항상 보습제를 달고 지냈다.


에드먼턴 다운타운에는 약물을 하는 사람들과 노숙인들이 많아서 저녁 6시 정도만 되어도 혼자 돌아다니기 무서웠다. 이 에드먼턴에서는 거의 일만 했던 기억뿐이다. 나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에드먼턴에서 살면 겨울에 스노보드도 많이 타고 겨울 스포츠를 많이 즐길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실상은 바빠서 그러지 못했다.




우리의 첫 휴가


참, 나와 남편이 에드먼턴에 살면서 딱 한번 제대로 갔었던 여행이 있었다. 바로 밴프(Banff) 여행이었다. 에드먼턴과 밴프는 운전으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우리는 에드먼턴 생활 중 처음으로 2박 3일 정도 시간을 맞춰서 들뜬 마음으로 휴가를 갔다. 밴프는 웅장한 록키산맥에 경이로운 에메랄드 빛의 레이크루이스캔모어 그라시 호수가 있는 캐나다 안에서도 자연이 정말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은 한국에서도 항공편으로 예전보다 더 쉽게 찾아올 수 있게 된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밴프 레이크 루이스 Lake Louise, Banff, Alberta




가는 날이 장날


우리는 2013년 6월에 이곳에 가게 되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갔던 그때 마침 밴프에 홍수가 났다. 첫날에는 어디선가 물들이 계속 흘러들어오길래 단순히 비가 많이 와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도 관광을 다닐 수는 있을 정도여서 우리는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관광했다.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에 밴프는 정말 완벽한 곳이었다.



밴프 록키 마운틴 Banff, Rocky mountain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Fairmont Banff Springs Hotel







밴프 거리 풍경






휴가 둘째 날이 되었다. 첫날 관광할 때 먹구름이 끼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인터넷 뉴스 기사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우리가 여행 중인 밴프가 있는 캘거리 시에 홍수경보가 발령되어 긴급대피 조치가 내려졌다. 인근 엘보 강 상류에 쏟아진 폭우로 범람의 우려가 높아지자, 인근 행정구역 주민들에게 강제 소개령까지 내려졌다. 캐나다 당국은 긴급 성명을 통해, 주거 지역을 즉시 떠나 대피하거나 거처를 찾기 못한 경우 시가 마련한 공공 대피소로 이동하라고 뉴스를 통해 전했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휴가 한번 즐기러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다행히도 우리는 안전했지만, 우리가 묵었던 호텔 1층에도 물이 넘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첫날 알차게 돌아다녀서 망정이지, 관광도 제대로 못했었으면 휴가 내내 숙소에 갇혀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계획한 휴가 기간은 2박 3일이었고, 직장에도 그렇게 말하고 왔는데, 분위기를 보니 도로는 다 폐쇄되었고 며칠 안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직장에 이 상황을 알렸고, 뉴스에도 나온 자연재해 상황이라 직장에서는 걱정 말고 안전하게 잘 돌아오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며칠 더 묵어야 할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우리 호텔 숙박 기간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물어보았더니, 아니 이 남자 뭐지? 왜 이 상황에 텐트와 캠핑도구를 알아보고 있는 거야? 한국에서 군생활도 잘하고 캐나다에 와서도 군입대를 위해 시민권까지 받은 사람이라지만, 이 정도로 와일드한 상황을 즐길 줄은 몰랐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서 서로 너무 잘 알거라 생각했었지만, 이때 나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또 발견하게 되었다.


나에게 실컷 욕을 먹은 뒤, 남편의 홍수를 빌미로 한 텐트와 캠핑장비 구매는 수포로 돌아갔고, 다행히 주변호텔의 배려로 이틀정도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어서 우리는 이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했고, 돌아보면 웃음이 나는 우리의 여행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지낸 우리에게 며칠 더 쉬다 오라는 하늘의 선물이었다고 생각된다. 홍수의 해프닝이 있어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시 한번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밴프를 꼽을 만큼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짧다면 짧았지만 강렬했던 1년 반정도의 에드먼턴에서의 시간들. 앞으로 나의 캐나다 생활에는 또 어떤 나날들이 펼쳐질까?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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