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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리 Mar 29. 2024

캐나다에서 공짜로 대학 가는 방법

마음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오믈렛 퀸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그렇게 나이아가라에서의 새로운 챕터가 펼쳐졌다. 매일 출근이 즐거웠다. 호텔 특성상 연회 요리 외에도 조식 서비스는 매우 중요했다. 총괄셰프 제리는 나를 손님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는 오믈렛 스테이션에 배치시켰다. 초반에는 먼저 일하던 동료가 나를 트레이닝시켜 주었고, 몇 번 해보니 금방 손에 익었다. 한국에서 집밥으로 자주 해 먹던 달걀프라이도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걀요리에도 참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


달걀프라이의 한쪽만 익힌 반숙은 서니사이드업, 달걀을 뒤집은 뒤, 익히는 정도에 따라 오버이지, 오버미디엄, 오버하드... 스크램블드 에그, 수란홀렌다이즈 소스, 오믈렛 등 여러 가지 종류의 달걀 요리를 만들었다. 손님들이 주문하는 오믈렛 취향도 천차만별이었다. 종교에 따라, 기호에 따라 주문하는 스타일도 달랐고, 대부분 캐내디언과 아메리칸, 한국 손님들은 웨스턴 스타일로 양파, 피망, 버섯, 토마토, 시금치, 햄, 체다치즈 등의 다양한 재료가 다 들어간 오믈렛, 프렌치 손님들은 달걀만 들어간 플레인 오믈렛 또는 달걀에 치즈만 추가한 프렌치 스타일의 오믈렛, 대부분의 지중해나 스페니시 손님들은 달걀흰자만 사용하고 토마토, 시금치, 페타치즈 정도만 넣은 가벼운 오믈렛을 원했다. 그래서 일하는 나날이 길어질수록 주문 스타일만 봐도 '아 ~ 어디에서 오신 손님이겠구나' 대충 짐작이 갔다. 나중에는 몇백 명의 손님들에게 혼자서 다 서비스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이 빨라졌다. 그리고 훗날 요리 공부를 하게 되면서 내가 했던 달걀요리를 잘하는 것이 요리에서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믈렛 스테이션에서의 특훈으로 팬 사용하는 법과 불조절, 서비스하는 기술등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관광지 특성상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여름철은 특히 더 바빴다. 호텔이라 많은 연회 요리에 참여했고, 다양한 요리를 보면서 나의 요리를 보는 식견도 점점 길러졌다.



대부분이 캐내디언 손님이었지만, 한날은 우리 호텔에서 미주한인콘퍼런스가 있었다. 총괄셰프님은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식메뉴를 짜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처음이라 떨렸지만, 한국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민해 선정하고 셰프와 상의하며 재료를 고르고 준비해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사진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손님들께 직접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나에게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



나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인 편이다. 그래서 요리를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는 일이 나에게 잘 맞았기에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벽에 바라보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정말 황홀하다. 내가 일하던 호텔은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 호텔들 중에서도 폭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다. 높은 호텔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폭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맑거나 매일, 매시간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결같이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나는 특히 겨울에 주변이 눈에 덮인 폭포 뷰를 가장 좋아한다.


나이아가라 말발굽 폭포 Niagara Horseshoe Falls


혼블로워 나이아가라 크루즈 Hornblower Niagara Cruises


겨울의 나이아가라 폭포


호텔에 오는 손님들의 아침을 함께 시작하며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많은 칭찬도 받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한 요리를 먹고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해지는구나.’ 그래서 그때 생각했다.

‘더 잘하고 싶다. 더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





캐나다 요리학과 진학


호텔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으며 일하면서도 정식으로 요리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이 직업에 발을 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뭐든 한번 시작하면 파고드는 성격이 있어서 이왕 하는 일이라면 더 전문성을 가지고 싶었다.


나와 남편은 당시 나이아가라로 지역이동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라 한국으로 따지면 동사무소와 같은 서비스 온타리오(Service Ontario)라는 곳에 전입에 필요한 일을 보러 갔다. 할 일을 마친 뒤 나왔는데, 같은 건물 3층에 Skilled Trades Ontario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남편과 나는 호기심도 많고 뭐든 시도해 보는 성격이다. 저기는 뭐 하는 곳이지? 하며 함께 올라가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사무실에 올라가니 프런트 데스크에 직원이 있었다. 우리는 그냥 궁금해서 들어와 봤다고 하면서 정문에 있던 안내 책자를 보다가 한 신청서 양식을 발견했다. 어프렌티스십(Apprenticeship)이라는 것이었는데 기술직의 도제과정코스였다. 그때 당시 우리는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영주권자가 아닌데도 지원할 수 있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집에 와서 그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아니 이럴 수가, 국비지원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신청 서류였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면서 서류를 작성해 나갔다. 신청조건에는 현재 정규직 직장이 있어야 하고, 회사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나는 다음 날 서류를 들고 나의 보스인 총괄셰프를 찾아갔다. 그리고 내용을 설명한 뒤, 셰프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준비한 서류를 기관에 제출했고, 감사하게도 합격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캐나다에 유학을 오면, 국제학생으로 대학에 많은 학비를 내고 졸업을 한 뒤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는 캐나다에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이미 정규직으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터라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든 전공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 캐나다에서 특별히 필요로 하는 기술직에 관심이 있고, 혹시 나와 같은 경우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래 웹사이트를 참고해 캐나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skilledtradesontario.ca/


현장에서 요리 경력을 쌓으면서 조금 더 전문적인 요리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나는 그렇게 직장생활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공부할 기회를 얻은 것 자체로 너무나 감사했다.


참고로 나와 남편이 다닌 나이아가라 컬리지세계적인 관광지이면서 와인 산지이기도 한 이 지역의 특성 덕분에 호텔, 관광, 요리, 식음료 서비스, 와인, 맥주 제조 등 요식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특성화되어 있는 전문대학다.


https://www.niagaracollege.ca/


나에게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학비를 들이지 않고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다니... 내가 그때 캐나다 영주권자였다면 통학지원에, 졸업할 때 gratitutde(축하금)까지 받을 수 있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아쉽게도 당시에 나는 영주권자가 아니라서 그 혜택까지는 받지 못했지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감사했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에 임했다. 여전히 나의 영어는 많이 부족했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예습하고 공부해서 실기도 이론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도전, 새로운 시작


그렇게 호텔에서 일을 하면서 학교를 함께 다니며 어느덧 졸업할 즈음이 되었다. 조금 더 디테일한 요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요리과정을 수료하고 자신감이 붙은 나의 머릿속에 이전부터 지원하고 싶었던 레스토랑 한 곳이 문득 떠올랐다.


지난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나이아가라 지역에 처음 왔을 때, 일하고 싶은 곳 몇 군데에 이력서를 돌리고 머리도 식힐 겸 나이아가라 지역을 구경하며 다닐 때, 이곳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폴스뷰 카지노 리조트(Fallsview Casino Resort) 건물에 다녀왔던 날이었다. 흔히 카지노(Casino)라고 하면 게임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할 수도 있는데, 실제 이 건물은 리조트로서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호텔과 쇼핑시설, 공연장, 그리고 많은 레스토랑들이 갖추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한 이탈리안 파인다이닝이 내 눈에 띄었다. 고급스럽고 멋진 레스토랑을 바라보며 ‘나도 저런 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동경이 일었다.




나이아가라 폴스뷰 카지노 리조트 Fallsview Casino Resort, Ontario, Canada


https://fallsviewcasinoresort.com/


학교의 교수 셰프님께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침 교수님이 카지노 파인다이닝 출신이었다. 그 교수님은 평소에 나를 좋게 봐주셨는데,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 동료였던 카지노에 총괄 수셰프에게 내 앞에서 바로 전화를 걸어 나를 추천해 주셨다. 와우, 말씀 안 드렸으면 어쩔 뻔? ^^ 그리고 며칠 내로 면접 날짜가 잡혔고, 나는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러 간 날, 건물이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을 뻔했다. 내 생각보다 더 큰 조직이었고, 건물에 들어가는 과정부터 많은 보안절차를 거쳤다. 수셰프 중 한 분과 인사과 매니저를 만나 면접이 시작되었고, 추천을 받아 온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면접에 임하고 나는 합격했다.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던 것은, 그동안 정들었던 호텔과 감사한 호텔 총괄 셰프님께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 나를 믿고 기회를 주셨던 분이고, 내가 요리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었는데,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입을 떼었고, 총괄셰프님은 나와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어 많이 아쉽고 슬프지만, 내가 나이가가라에서 요리로 최고의 직장에 갈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며 축복해 주셨다. 사실 두 곳 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이라서 거리상으로는 바로 코앞의 거리였다.




고마웠던 모두들,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나의 요리 이야기... 다음에 계속...


https://www.youtube.com/watch?v=falVRvS8ljY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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