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끝까지 간다 프로젝트
목숨을 걸고 위험한 도전에 전념하는 사람들, 집요하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고자 온 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 이런 캐릭터를 보면, 그 집요함과 도전 정신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 질문에는 시기심과 부러움도 배어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과거의 한계, 관성을 돌파하기 위해 문제가 집적된 공간에 온 몸으로 투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빚어진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돼? 이런 의문과 질문이 드는 곳에서 어제와 다른 이야기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그리하여 온 몸을 다해 새로운 이야기의 창조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존경심과 한편으로는 시기심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마주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낯선 질문을 하게 된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때론 그 낯선 영역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에 헌신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신이 아브라함을 자신의 아들로 선택할 때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익숙한 세계, 어제의 세계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그 시기로부터 또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출애굽 사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430년 동안의 노예 생활을 벗어나는 새로운 스토리로서 출애굽 사건의 1회는 이집트의 울타리를 넘어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데서 연출되는 것이었다.
출애굽기를 읽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시련, 그리고 이를 극복해내는 웅장한 드라마를 마주하게 된다. 이집트를 떠난 미지의 무대는 풍요로울 리 없었고, 자주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때마다 “나 돌아갈래!” 이 마음이 지글지글 끓어오르기도 하지만, 어제와 다른 스토리는 그 고통과 함께 빚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길, 어제와 다른 길, 자유에 이르는 길은 결코 잘 닦인 포장도로, 익숙한 주변 풍경에서 빚어지지 않는다. 그 길은 외롭고 거칠고 황량할 뿐 아니라 곳곳에 예기치 않은 웅덩이, 참호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에 있어 빽도란 없다. 이미 들어선 길 위에서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 갈 뿐이다.
출애굽 공동체는 40년 동안 이미 들어선 길, 마땅히 가야 할 길 위를 뚜벅뚜벅 걷는다. 그 길을 이끈 시즌 1의 주인공이 모세였다면, 바톤을 이어받은 시즌 2의 주인공은 여호수아였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근거리에서 따랐던 사람이고, 신은 그에게 모세의 뒤를 이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명한다. 생각해보면 외롭고 막막한 길이며 책임이 막중한 길이었다. 어떤 일에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은 참 두려운 일이다. 주저하는 그에게 신의 응원가가 펼쳐진다.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여호수아 1:9)”
살다보면, 새로운 길에 들어설 때, 낯선 일을 시작할 때 두렵거나 낙담할 일들이 태산이다. 태산 앞에 주저하게 되는 날들도 참 많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무서울 때도 많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처음 길을 떠날 때, 처음 소명을 받았을 때 자기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럴 때마다 신의 단호한 음성이 이들을 독려한다. 주저하는 이들에게 “내가 늘 너의 곁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넓고 깊게 펼쳐지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이 약속이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함께 하겠다’,
‘떠나지 않겠다’,
‘버리지 않겠다’.
이 강력한 약속 끝에 신은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한다. 이 단호한 음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어떤 날, 어떤 국면에 큰 격려와 응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우리가 여호수아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지만, ‘굳세고 용감하여라’, 이 말이 때론 위로가 되고 때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 거다.
물론 이렇게 마음 먹으면서도 나의 쪼잔한 발걸음은 자주 흔들리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거다. 예기치 않은 시련과 고통과 갈등 앞에 흔들릴 것이고, 덧없는 생각들과 후회들과 두려움에 마음이 번잡스러울 순간들도 켜켜이 쌓여있을 거다. 그럴 때면 신의 이야기, 지금 내가 읽은 텍스트 같은 것은 아마 까마득히 멀리 있을 거다. 이때 이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여호수아 1:8).”
마음도 일상도 세상도 분주하다보면 자주 놓치는 게 내 책상 어딘가에 놓인 "먼지 쌓인 지도"다. 인생의 길 위에 노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히 읽고, 공부하고, 배우는 게 필요하다는데, 이게 마음의 지옥에 빠질 때는 알면서도 수행하기 어렵다. 아니 알면서도 거부한다. 출애굽기는 번뇌의 시간, 권태로운 시간, 회의의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 밖의 이야기, 오랫동안 전승된 신의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하는데, 그게 너무너무 어려운 거다. 그럴때 부여잡을 답이라는 게 있다면? 결국 다시 이야기다.
참참참...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잘 안될줄 알면서도, 어제의 두려움, 불안, 답답함, 자기연민, 외로움, 쓸쓸함, 이로부터 한 뼘이라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자아, 에고, 욕망의 자기장에 속절없이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래된 이야기들을 읽고, 글을 쓰고, 거룩한 삶에 대해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실천해보자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창조하기를 기다린다.” (Dominique de Menil, Rothko Chapel Book, 2010, p.8)
언제 어디선가 읽고 큰 감동을 받아 픽해둔 문장이다.
신은 우리가 굳세고 용감하게 그 분을 창조하기를 기다린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아니라 그 분을 창조하기 기다린다니.. 멋지지 않은가?
이 새로운 낯선 길을 가보는 거다.
담대하게, 굳세게, 잘 안될줄 알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내 밖의 목소리, 타자, 낮은 곳에 임하시는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