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금을 즐기는 법,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약성서 끝까지 간다 프로젝트

by 오윤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 그러나 가장 절실하게 멀리해야 할 유혹이 뭐냐 물으면 “내가 주인공인 삶”이다. 나를 전면에 내세우고, 누군가를 내 삶의 수단으로 삶으며, 내 의지를 관철시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일상은 파탄을 맞는다. 누구를 지배하려고 하는 순간 새로운 막장 드라마는 빚어지고, 그 드라마의 서사 속에 빠지는 순간 삶은 지옥이 된다. 그리하여 “내가 주인공인 삶”은 드라마틱하게 흥미롭지만, 그만큼 고통과 번민도 크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위로의 이야기는 세상에 넘치고, 나를 버리라는 목소리도 종교 세계에 넘치고 넘친다. 가령 이런 이야기.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자신이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확신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2008)


7-1latino-2569583_1280.jpg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삶에 쏙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주인이고 내가 목적인 삶, 이 강력한 메시지가 오랜 시간 몸에 베여있기 때문일 테다. 서울 밖의 한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재미있는 변화를 겪고 있다. 이웃이 생겼다. 상추를 전해주고, 커피를 전해주고, 골뱅이 무침을 전해주고, 막걸리를 전해주고, 가끔씩 옹기종기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를 연다.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그 주변에 봄꽃이 피고 진다. 이게 무슨 관계냐구? 그냥 좋은 이웃. 다른 공간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연립주택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좋은 이웃의 한 등장인물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미묘하다. 이사를 하고 처음 며칠은 윗층에서 나는 층간소음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소음이 귀여운 두 꼬맹이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이 두 꼬맹이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견디기 어려웠던 소음은 자꾸만 기다려지는 화음으로 극적으로 전환된다. 무슨 말인가? 어떤 관계에서는 마음이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지지만, 어떤 순간, 어떤 관계에서는 마음이 얼어붙고 강팍해지는 거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인간의 마음은 늘 위태롭다’(人心惟危)고 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7-2children-817365_1280.jpg


이 마음의 위태로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성경 속 인물은 아마도 사울이 아닐까 싶다. 이스라엘 역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초창기에 활약한 이스라엘 지도자는 사사judge라 불렸다. 사사 시대가 끝나고 그 다음 챕터가 왕국의 시대인데, 왕국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최초로 통치권을 위임받은 사람이 사울 왕이었다(존 드레인, 2011, p. 169). 1대왕 사울은 성경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그리하여 가장 비운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무대에 끌려 나온다. 사무엘이라는 선지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사람, 그러나 운명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데... 남들보다 앞에 선 사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 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기도 모르게 왕의 습속을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된다. 섬김을 받는 일이 당연한 것이 되고, 특권이 불편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싫은 말은 멀리하게 되고 달콤한 아부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향할 때 불편함을 느끼고 분노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억압적인 존재로 변해가는데...


다윗이 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사울의 조급함, 불안함은 권력이 한 인간을 얼마나 비루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음 아프다. 애초 다윗은 사울이 번민과 우울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채용된 하프 연주자였다. 다윗의 연주는 사울의 외로움, 고통, 불안을 잠시나마 잠잠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애정하여 최측근의 자리에 늘 배치했지만, 그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후 사정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다윗을 영웅으로 여겼고,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최고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를 향한 시선이 누군가로 바뀌게 되는 것에서 오는 쓸쓸함.


7-3사울.jpg souce: Painting by James Tissot (1836-1902). Culture Club / Contributor / Getty Images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지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인생은 비루하고 누추해지기 쉽다. 질투와 시기심이 내 마음을 지배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미워하게 된다. 사울은 다윗을 위험한 지역의 전투로 내몰면서 그를 없애려 여러 차례 시도한다. 그때마다 다윗은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그때마다 사울의 광기는 커져간다.


사울이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캐릭터라면 다윗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캐릭터다. 그는 열정과 욕망을 이성적으로 누르고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사울에 비해서는 인간적 매력은 떨어진다. 겸손해보이지만 뭔가 음흉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런 정치적 욕망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야심가이기도 했다.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골리앗을 물리친 이후 대중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고, 그 결과로서 사울의 질투와 시기심이 점점 더 커지자 그는 권력에서 물러나 블레셋으로 피신을 한다. 거기서도 의혹의 시선을 받자 아둘람 굴로 은거지를 옮기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른바 변방의 이방인, 압제를 받는 사람들,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훗날 다윗왕국을 만드는 주춧돌이 된다. 이른바 아둘람 굴에서 보낸 한 시절, 거기서 만난 일군의 사람들이 훗날 왕국 설립의 발판이 된다고 할까?


7-4david.jpg source: the German painter Osmar Schindler in 1888


이 발판을 만드는 행보에 있어서도 다윗의 발걸음은 냉철하고 조심스럽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부하들이 사울을 제거하자고 말할 때마다 그는 부하들을 타이른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우리의 임금님을 치겠느냐? 주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왕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다”(삼상24:6).


다윗은 끈질기게 집요하게 때를 기다린다. 순간적인 열망에 들떠 쿠데타의 열매를 날름 따먹기보다 때를 기다리고, 신이 세운 권위를 스스로 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으로 남는 장면.


다윗은 골짜기 건너편에서 자기를 추격하던 사울을 부른다. 그리고 자기가 받고 있는 억울한 오해를 호소한다. 그의 손에는 사울의 옷자락이 들려 있다. 죽일 수도 있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사울은 자초지종을 깨닫고 놀랐다. 그리고 목놓아 운다. 그 울음 속에 담긴 감정은 여러 가지였을 거다. 고마움,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부끄러움, 두려움. 사울이 고백한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삼상24:17)”. 뭔가 쓸쓸한 고백이다. 사울은 “주님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면서 다윗이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굳게 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길로 향한다. 사울은 자기의 왕궁으로, 다윗은 자기 산성으로 올라간다.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은 거다. 자기의 몰락을 예감하면서 보내야 할 사울의 시간은 슬픔과 쓸쓸함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을 거다. 이후에도 사울과 다윗은 추격자와 쫓기는 자로서 지낸다. 그러다가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그의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고 다윗은 사울과 그의 벗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를 지어 바친 후에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7-5smartphone-1987212_1280.jpg


다윗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때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아마 지혜일 거다. 모든 시간은 아름답다. 그러나 다른 때를 욕망하고, 그 때를 앞당기려는 조급함때문에 지금 이 때를 한껏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어리석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을 지내면서 간직해야 할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설 땅이 되고, 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이게 지금 이때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편 아닐까?

출근을 해야할 때다. 오늘도 파이팅.




<참고문헌>

아브라 요수아 헤셸(2008). 누가 사람이냐, 이현주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존드레인 (2011). 성경의 탄생. 서희연 옮김. 옥당.

keyword
이전 06화#6. 또다시 악한 일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