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야 할 말은 "미안합니다" 아닐까?
한글날이다. 광화문을 지나는 자리, 조국, 문재인, 소리는 시끄럽다. 가을날의 바람 소리를 느낄 여유는 없다. 마음은 헛헛하다. 어젯밤(2019년 10월 8일)부터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알릴레오다. 더불어 KBS 뉴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시원한 바람, 분열된 광장, 헛헛한 마음, 알릴레오와 검찰과 KBS의 이야기까지.. 하늘, 땅, 바람이 기막힌 선물이라면, 인간, 사회, 언론은 내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무언가다. 문제는 여기서 무관할 수 없다는 게 문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제 방송된 <뉴스 9>를 찾아본다. 쟁점이 되는 이야기들. 이런 거다.
“KBS가 취재원(정경심 교수 자산 관리를 담당한 한투 PB 김경록 차장) 인터뷰를 보도는 하지 않고 (검찰에) 넘겼다는 (유시민 작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인터뷰 다음날 (9월 11일) 방송을 했고, 김경록 차장과의 인터뷰 내용은 검찰 누구에게도 제공 안 했다.”
“(물론) 김경록 차장의 증언이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는지 교차 검증하기 위해 김 씨 증언을 바탕으로 일부 사실관계를 검찰에 재확인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 관계자의 증언에 대해선 다른 취재원을 통해 가능한 범위에서 재확인을 해보는 것은 보통의 취재 과정이다.”
“그러나 내용을 일부라도 문구 그대로 문의한 적이 없고 더구나 인터뷰 내용 전체를 어떤 형식으로든 검찰에 전달한 적 없다.”
“김경록 차장의 증언이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는지 교차 검증하기 위해 김 씨 증언을 바탕으로 일부 사실관계를 검찰에 재확인했다."
"내용을 일부라도 문구 그대로 문의한 적이 없고 인터뷰 내용 전체를 어떤 형식으로든 검찰에 전달한 적 없다"
이 말들이 마음 한 켠에 걸렸다.
"피의자의 증언 중 일부를 피의자를 수사하는 검찰에 재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까?"
"문구 그대로 문의한 적이 없다면, 문구를 바꿔서는 문의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일까?"
"내용 전체를 검찰에 전달한 적 없다면, 내용 일부를 검찰에 이야기 했다는 걸까?"
뉴스를 보면서 여러 의문이 들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 언론의 잘못된 관행으로 불거진 문제 아닐까?
문제는 KBS 법조팀이 아니라 언론 그 자체 아닐까?”
한국 언론의 관행이 문제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이 관행에 대해 문제될 게 없다는 KBS의 견고함, 잘못이라면 이 견고함이 잘못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알릴레오 방송 후 시청자들이 KBS에 질문하는 것은
“너희 왜 인터뷰를 보도하지 않았어?”,
“너희 왜 인터뷰 내용 전체를 검찰에 넘겼어?”가 아니다.
다만 의심이 드는 거다.
“피의자가 자신이 한 이야기가 왜곡되었다고 생각해. 편집을 하면서 듣고 싶은 것만 잘라서 쓴 것 아닐까?"
다만 의아해하는 거다.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꼭, 굳이 피의자를 수사하는 검찰을 만나 이야기해야만 했던 것일까?"
<뉴스 9>의 반박은 전자의 질문(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지, 후자의 질문(진짜 궁금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다. 핀트를 잘못 잡아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이게 KBS 뉴스의 견고함으로 읽힌다.
이 견고함을 다른 말로 하면 취재관행일 거다.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크로스체크가 필수적이다."
"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정확한 사실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검찰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피의자의 이야기를 검찰을 만나 재확인하는 과정은 불가피하다"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을까? 이 불가피함이 시청자들에게는 검찰과 언론의 공생관계로 읽히는 것은 아닐까? 이 불가피함이 취재원(피의자)의 입장에서는 언론사의 무례로 읽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상식.
만약 내가 어떤 일로 피의자가 되었는데, "나의 무죄", "나의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해 한 언론인을 만나 다양한 맥락을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가 왜곡되어 방송되거나, 나의 입장과 정반대의 근거로 활용된다면, 나는 그 언론인과 언론사에 절망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어떤 일로 피의자가 되었는데, "나의 무죄", "나의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해 한 언론인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사실과 그 언론인에게만 했던 이야기를 나를 유죄라고 의심하는 수사기관이 알고 있다면, 나는 더이상 그 언론사를 믿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증오할 것 같다.
범죄 혐의로 수사대상이 되어 있는 취재원을 만난 후 사실을 확인하겠다고 그를 수사하는 검찰과 마주하는 것은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과도하게 기계적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증언 내용에 대해 가능한 범위에서 재확인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증언을 한 대상이 피의자라면 ‘가능한 범위’의 선택에 있어 수사기관은 예외가 되어야 하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닐까? 한마디로 매우 나쁜 관행이다.
나는 사실 확인을 검찰에 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의자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찰에게 흘러져 갔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리고 검찰은 이렇게 흘러간 정보를 심문 과정에서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 역시 검찰의 관행일 거다. 한국사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건들이 모여서가 아닐까?
개인이든 조직이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를 하고, 많은 오류를 저지른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의 작은 실수 하나가 일파만파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억울할 때도 많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렇게 했던 건데 왜 하필 나한테 이러는 거야?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이든 조직이든 멋진 놈들은 누군가 나의 행위로 상처를 받았다면 진심으로 고개 숙일 줄 안다. 나는 내가, 그리고 내가 속한 KBS가 이런 생명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정경심 교수 자산 관리를 담당한 한투 PB 김경록 차장의 인터뷰 내용 중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검찰을 만나 재확인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사건에 있어 가장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처가 검찰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언론의 유착을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취재원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피의자라는 측면에서 좀 더 세심함이 필요했는데 저희의 무심한 관성이 세심함을 이겼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기사가 취재원의 의도와 무관하고, 취재원의 인터뷰 취지를 왜곡했다면 이 역시 반성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KBS 뉴스의 관행을 전면적으로 리뷰하고, 좀 더 나은 저널리즘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구구절절한 설명과 변명보다 "미안합니다"라는 이야기가 우선되었으면 좋겠다. 사과는 “누군가 나의 무심한 행동과 선택으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면 하는 게 도리”다.
특히 그게 공영방송이라면...
조직이든, 개인이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참 어려운 세상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