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뉴스 이야기의 마지막은 브랜드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왜냐? 이게 지금과 같은 언론의 위기가 밥먹듯이 이야기되는 국면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저널리즘은 복합하게 생각할 것 없이 기업이 자신의 브랜드 가치, 신뢰도,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 스스로 저널리즘 활동을 하겠다는 선언, 자기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 중견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 상에서 “브랜드 저널리즘”, “브랜디드 콘텐츠”를 기획, 제작, 운영하고 있다. 좀 크게 보면 이건 기존의 TV광고, 특히 브랜드 이미지 광고의 핵심 플랫폼이었던 지상파 TV 광고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가령 삼성전자는 2015년 11월부터 자체 뉴스룸을 운영하는데,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상품에 대한 광고, 삼성전자와 관련한 상당수의 기사들, PR들은 이곳을 거쳐 유통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뉴스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까? 삼성전자 뉴스룸의 페이스북 팔로우만 310만명(2019년 9월 기준)이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같은 기간 JTBC뉴스채널의 페이스북 팔로우가 92만명, KBS뉴스채널의 페이스북 팔로우가 66만명, TVN 채널의 팔로우수가 86만명이다. 삼성 전자 입장에서 기존 TV 채널에 광고를 줄 이유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여기서 브랜드 저널리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각 기업의 “브랜드 저널리즘”이 기존 미디어의 위상, 광고매출 등에 커다란 타격을 준다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함이 아니라, 각 기업이 주력하는 브랜드 저널리즘 기법을 언론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2010년 이후 기업에서 갑자기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나온 것은 기존의 기업을 지배하던 관행들, 가령 광고와 브랜드 포지셔닝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마케팅 활동이 낡았고, 오만하며, 그간의 마케팅 활동이 소비자들로부터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마케팅을 악의 근원으로까지 보는 반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Bhargave, 2012). 자연스럽게 이 대응은 “저널리즘”이라는 이름 하에 신뢰와 진정성의 구축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고, 바로 이런 이유로 “신뢰의 구축”을 목표로 삼는 언론사도 조금은 진지하게 이 흐름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레퍼런스가 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의제설정, 아젠다세팅, 아젠다키핑을 넘어 사회적 문제(의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과 대안, 새로운 기회를 고민, 탐색, 실천하겠다는 선언이다.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미국에서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바라만보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태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 되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2016년 시작한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편집국장 오드리 쿠퍼(Audrey Cooper)가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동종업계 동료들을 설득해 80여개 지역 언론사가 연합해 출범한 프로젝트다.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인의 비율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라 한다. 이를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삼은 샌프란시스크 지역 언론사들은 보통의 시민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추적했고, 여러 정책적 과제들을 직접 실험하고 검증하면서 대안을 파고 들었다. 오드리 쿠퍼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당신이 어떤 뉴스를 읽건, 하루에 한번은 꼭 홈리스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홈리스 프로젝트를 이끌었다고 한다. 9개월 동안 협업 프로젝트의 결과, 홈리스 보호소 건립이 앞당겨졌고, 기업 후원도 늘어났다. 노숙인 바우처 제도도 정착됐다. 2018년에는 노숙인 지원법안이 통과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들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고 노숙인 약물 치료와 보호소 확충, 노숙인 재활 지원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이정환, 2019, 8, 3, 슬로우뉴스, 솔루션저널리즘 질문으로 시작하자).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의식은 “이게 솔루션입니다”를 외치는 영웅담이나 미담을 부각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수사와 거대담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다.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는 “인식의 문제다.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허망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의식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의식은 해법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라는 것이다. 언론이 해법을 찾아내라는 것도 아니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도 아니다. 해법을 찾는 과정을 추적하고 변화의 매뉴얼을 제안하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누가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해법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이정환, 2019, 8, 3).”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언론이 솔루션을 추적하고, 어떤 사회 변화를 조직하고 이끌려고 하면 객관성, 불편부당성, 중립성, 공정성 등 기존의 언론가치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거다. 또 삶이라는 건 늘 기획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의 개입이 늘 좋은 결과로 보장될 수 없다는 것, 이 모델이 대중화될 경우 미담뉴스와 영웅 숭배로 전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등도 우려의 시선 중 하나다.
이런 우려에 대해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부정적 뉴스 일변도의 저널리즘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정치와 정부의 무능이 쉽사리 극복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존 저널리즘 모델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늘 정부를 쳐다보면서 비판하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시도가 필요한 게 아닐까? 솔루션 저널리즘이 “시민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한국에선 “시민 없는 민주주의”가 극심한 지역 언론 차원에서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막장 드라마도 좋지만, 다른 유형의 드라마도 볼 수 있는 시청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강준만, 2019, 4월)“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한국 언론의 위기가 “신뢰”의 위기라면, 믿음을 준다는 것은 비판과 부정을 넘어선 적극적인 탐색과 행동을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흐름에서 빼먹을 수 있는 이야기를 쏙쏙 빼먹는 것은 한국 사회와 시민들에게 언론이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좀 더 현장과 가까운 지역 언론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자~ 이제 언론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다.
한국의 언론에 대해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무감각해진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KBS 뉴스의 문제, 이에 대한 대안적 실험으로 디지털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에 대한 응원까지.
이 모든 장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믿을만한 언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믿을만한 언론이 공영방송 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탄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서 본 ‘인터넷 뉴스 언어번역기’라는 게시글이다. 굉장히 웃기는데 마음이 서글퍼진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의 언론은, KBS 뉴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전북대 강준만 교수님, 미디어 오늘 이정환 대표님, 브랜드 저널리즘은 주창한 라이트의 제언을 내 식대로 정리해보겠다.
난 이 중에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진정성.
누군가에게 믿을만한 저널리스트로 보이는 것에 “가짜”는 안 통한다.
좋은 시민이 좋은 저널리스트가 되는 시대다.
오른손이 한 좋은 일들을 왼손이 알게 하는 게 절실히 중요한 시대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는 좋은 레퍼런스가 너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각자의 영역에서 좋은 시민이 되고, 좋은 저널리스트가 되고, 좋은 연구자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