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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Jan 16. 2022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바보들의 결탁

#22.01.16

심혜경(2022, 1월).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더퀘스트

잘 배우고 잘 나누는 것. 올해의 목표다. 이런 목표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12년차 번역가 심혜경의 공부 에세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김혼비, 하정, 최예선 등 젊은 작가들의 ‘왕언니’이자 ‘삶의 롤모델’로 꼽힌다는 출판사의 저자 소개보다 인상적인 것은 공부에 대한 정의였다. 나랑 비슷헸다. 그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라고 말한다. 수학과의 관계에 쌓인 앙금을 풀기 위해 《수학의 정석》을 다시 풀어보는 것도, 《어린 왕자》를 원어의 맛으로 느끼기 위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것도, 스윙댄스나 바느질을 배우는 것도 공부다.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은 공부라는 생각에 백배 공감했다. 카페에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했다. 

“사람들마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트인 공간이 주는 공공성을 즐긴다. 혼자 있음에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함께 있지만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지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약간의 제약이 뒤따르는 그 장소성이 내 자세와 태도를 바로잡아줘서 더 좋다.”


존 케네디 툴 (2021,12,25). 바보들의 결탁(40주년 기념판). 김선형(역). 연암서가.

중세를 흠모하고 타락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서른 살 청년 이그네이셔스가 만년 백수로 살아가다 돈을 벌러 나가야만 하는 위기에 봉착해 겪는 이야기란다. 주인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한 게으름뱅이, 정신 나간 올리버 하디, 뚱뚱한 돈키호테, 변태적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몽땅 하나로 뭉뚱그려놓은 인물”이라고 표현되는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 

그는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구제 불능의 백수다. 걸핏하면 화를 내며 끊임없이 불평을 터뜨리고 주변 인물들에게 가혹한 말을 해대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그는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취직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소동극. 돈키호테 같은 이그네이셔스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리바이 팬츠의 80대 비서 겸 경리 미스 트릭시, 무기력하고 초췌한 맨큐소 순경, 가금류를 좋아하는 버번 거리의 스트리퍼 달린, 그리고 스페이스에이지 선글라스를 낀 수다쟁이 존스 등 뉴올리언스 괴짜 주민들의  우당탕당 우스꽝스러운 일상극이라는데… 굉장히 구미를 땡기는 캐릭터들의 결탁이다. 존 캐네디 툴의 이 책은 작가 사후 11년만에 빛을 봐 “코미디계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하는데…  


TJ Klune(2021,11,18). 벼랑 위의 집 : 아서와 선택된 아이들. 송섬별(역). 든.

마법적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마법적 존재들의 능력이 두려웠던 사람들은 특별 기관을 만들어 그들을 관리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세워진 기관이 바로 ‘DICOMY(마법관리부서)’. 

바로 그 DICOMY에서 마법아동 ‘고아원’을 조사하는 라이너스 베이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존재감 제로의 그에게 어느 날 4급 기밀 업무가 주어진다. 마르시아스 고아원으로 파견을 나가 해당 고아원이 안전한지를 조사하라는 것. 상부에서는 그곳에 사는 6명의 아이들을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베일에 싸여있는 원장 ‘아서’까지도. 그렇게 떠나게 된 한 달 간의 여정. 꼬박 8시간을 달려 도착한 종착역, 마르시아스섬에 발을 내디딘 순간 라이너스는 놀라운 광경과 마주한다.

흔치 않은 여자 노움 ‘탈리아’, 

꽃과 나무를 피워내는 숲 정령 ‘피’, 

종족을 알 수 없는 초록색 덩어리 ‘천시’,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시어도어’,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샐’, 

종말을 불러오는 자의 피를 가진 ‘루시’까지. 

라이너스가 가까이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은 소문과 다르다. 화원의 비료로 사용하겠다느니, 세상의 종말을 불러오겠다느니 틈만 나면 협박조를 일삼아 라이너스를 기절초풍하게 만들곤 하지만 정작 이들 꼬맹이들은 깊은 숲속에서는 전부 라이너스의 다리 뒤에 숨어 눈만 꿈뻑이기 일쑤다. 라이너스는 그런 아이들에게 서서히 스며듦과 동시에 아이들이 내면에 웅크린 상처를 보게 되고….

단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악마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종족의 특성 난폭하다는 이유로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아이들은, 종족, 과거, 편견 대신 지금 눈앞의 모습만을 보는 마르시아스 고아원에서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그곳은 잠시 머무는 고아원이 아니었다. 나를 응원하고 이해해주는 이들이 있는 따스한 품이었다. 아이들은 말한다. 자신들의 ‘집’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라이너스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도 되묻기 시작한다. 나의 집은 어디일까. 나는 지금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다운 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민태기(2021,12,31). 판타 레이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 사이언스북스.

판타레이가 뭔지도 모르고 유체 과학사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켓을 쏘는데 핵심 기술이 유체역학이라고 한다. 공학 꿈나무들을 좌절로 이르게 하는 어려움으로 악명이 높다고도 하는데… 그런데 지난 2,500년 동안의 과학사와 기술사는 사실 유체 역학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은 흐른다.”라고 언명한 이후 수많은 천재와 지성들이 소용돌이 흐름이라는 뜻을 가진 보텍스(vortex, 와류 또는 와동)를 중심에 놓고 자신의 사상과 연구를 전개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원자론,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은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유체’에 대한 연구는 도무지~~

그런데 과학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이제껏 과학사에서 공백으로 남겨진 미싱 링크가 유체 역학이라고 한다는데… 이 책은 바로 이 주장을 추적하는 이야기인 듯 싶다. 물론! 과학사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인 유체 역학의 역사를 말하기만 하는 건 아니란다.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는 관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간다고 하는데…. 

유체 역학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항공기와 로켓 기술로 주목받으며 공학 분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또한, 유체의 개념들은 에너지와 경제의 ‘유동성’으로 확장되어 현대 사회의 중요한 흐름을 이끌고 있다는데…

사실 여기까지 읽고도 이 책을 뭘 이야기할지 잘 가늠은 되지 않는데, 괜히 구미가 땡긴다. 잃어버린 미싱 링크 “유체”라니… 


김중혁 (2021, 12, 15). 오늘 하루만 잘 살아 볼까? 김중혁 에세이. 자이언트북스.

하루하루를 신나고 즐겁게 살고 싶은, 딱 하루만 잘 살아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란다. 누가 기획을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과 같은 집콕 시대에 어울리는 이야기라는 생각.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직전, 천장을 올려다보며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외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니.. 

매일 찾아오는 하루를 어떻게 해야 더 신나고 즐겁게 살아낼 수 있는지를 100가지의 방법을 통해 제시한단다.

가령 이런 것. ‘오늘 하루의 기분 그래프를 그려 보자’, ‘내 감정을 건물에 비유해 보자’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하고 있는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내 마음 속의 괴물을 그려 보자’ “예스데이와 노데이를 만들어보자” “두 사람이 대화를 상상해 적어보자” “진짜 웃기는 영화를 보고 웃어보자”.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자.” “자신이 최근에 느꼈던 가장 강렬한 분노를 적어 보자. 그리고 복수 방법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자.” “한국의 기차역 지도를 펼쳐 놓은 다음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도시에 가서 하루를 지내 보자” 등등

책을 살 것 같지는 않지만… 화두는 킵해두자. “오늘 하루만 잘 살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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