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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Oct 18. 2024

단막극, <드라마스페셜>을 아시나요?

“드라마스페셜”을 아시나요?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드라마스페셜>을 소개해야 할 때 저는 늘 이 네모 3개를 띄워놓고,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드라마스페셜은 국내 방송사 중 유일하게 40년간 명맥을 이어온 대한민국의 대표 단막극입니다.”

“드라마스페셜은 한국 드라마를 이끌어 갈 신진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의 등용문으로서, K드라마의 미래에 투자하는 단막극입니다”

“드라마스페셜은 다양성과 소수성의 가치를 발판으로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단막극입니다.”     


단막극.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단막극은 K-드라마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장르라고 오랫동안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신인 작가, 배우, 연출자의 등용문이면서 연속극이나 미니시리즈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새롭고 실험적인 소재나 양식을 선보이기 때문이죠. 드라마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단막극은 첫 단추와 같은 프로그램이었고, 현재 K-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필모그래프를 역추적 하다보면 신인 시절 어디선가 단막극과 함께 했던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많은 스타 배우를 비롯해 작가, 감독들이 여기로부터 훈련받고 발견된 것이죠. 5년 후, 10년 후 K-드라마를 이끌어 갈 스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첫 발걸음을 응원하는 단막극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꽤 멋지고 낭만적인 프로젝트 아닌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은 꿈과 낭만만으로 먹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죠. 드라마 시장이 상업화되고 글로벌화 될수록 단막극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는 줄어들고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단막극에 투자를 하겠다는 시대의 기운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죠. 얼마나 현격하게 줄어 들었냐구요?


2004년 98편 

2014년 36편 

2024년 13편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단막극이 방송된 편수의 변화만 보더라도 그 줄어듦의 기울기가 얼마나 가파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단막극을 만드는 프로듀서입니다. 올해로 3년째 단막극과 함께 하고 있는데, 올해 제게 부여된 미션은 “단막극을 지켜라”였습니다. ‘시청률을 높여라’도 아니고, ‘다양성을 강화해라’도 아니고, 지키는 게 목표였습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죠. 그런데 어디서도 투자를 한다는 곳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단막은 위기라고 불렸지만, 2024년의 위기는 체감적으로 차원이 달랐습니다. 제작비를 줄이고, 편수를 줄이고, 몸짓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생명줄이 끊길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 파악이 안돼? 지금 회사가 어려운데 무슨 단막극이야?”

“드라마 시장이 안 좋은데 단막극이라뇨? 그것도 곳간이 풍요로울 때나 가능한 것이지.”

“드라마스페셜, 이제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너무 단막극 지키려고 애쓰지 마세요.”

“단막극에 투자하면 배임입니다. 회사에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결정을 어떻게 합니까?”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대표라면 단막극에 투자하겠어요?”

“공적자금을 단막극에 지원하는 게 무슨 실익이 있어요? 글로벌향 OTT 시리즈물에 지원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공공성입니다. 한류가 중요합니다.”       


단막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지원과 투자를 호소할 때마다, 누군가의 난감한 표정, 단호한 목소리, 냉소적 시선, 무심한 몸짓을 마주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갔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오기가 생기고, 한 편으로는 물음표가 붙었습니다. 하도 곳곳에서 평등하게 거절을 당하다 보니, “어떻게든 지켜낸다”는 독기가 생겼고, 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끝났어!”라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끝인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낙담하고, 구겨진 하루의 끝에 입이 댓 발 나와 집에 돌아오면 TV를 켜고 지나간 단막극들을 하나 둘 챙겨보기 시작했습니다. 독기를 빼고, 회의적인 질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필요했는데, 단막극이 그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에는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건조하고 황량한 곳에서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단막극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단막극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게 일상의 루틴이 되면서, 두 가지 점에서 놀랐습니다. 

하나, 단막극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정작 난 단막극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구나.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단 말이야!” 

둘. 방송이라는 속성 상 정말 좋은 단막극들이 속절없이 창고 속에 묻혀 있구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방송 후 그냥 잊혀진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그러면서 작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재미있게 본 단막극들을 단편소설 형식으로 바꿔 세상에 내보이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소설이나 웹툰 IP를 드라마화하는 것처럼, 단막 IP를 소설화하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내가 느낀 단막극의 재미를 티끌만큼이라도 세상과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단막극을 단편소설로 각색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영상화를 목표로 하는 시나리오보다 텍스트를 근간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좀 더 독자들에게는 편하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나리오는 영상으로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로 연출, 촬영감독, 미술감독, 음악감독 등 제작자를 독자로 삼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하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는 좀 더 편하게 단막극을 즐길 수 있는 방편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 각색의 목표가 제가 느낀 단막극의 재미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엄청난 변주를 도모하지는 않았고, 시점도 단막극의 맛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수렴시켰습니다. 이야기란 궁극적으로 주인공에 관한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목표는 딱 하나. “어라? 단막극, 색다른 재미가 있네. 이건 계속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정도의 마음만 불러일으킬 수 있어도 그걸로 성공. 

재미있을까요? 재미있다니깐요! 재미있어야 할텐데... 

재미없다면? 그건 전적으로 각색의 실패이니 원작을 봐주세요. 


과거의 단막극은 “KBS드라마클래식 채널(유튜브)”에서 

올해 작품은 11월 5일(화)부터 KBS 2TV와 웨이브를 통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단막극! 드라마스페셜! 재미있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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