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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Oct 22. 2024

내 이름은 도도혜, 수학교사랍니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 (1)

드라마스페셜, 2018년작, 극본 배수영, 연출 황승기
내 이름은 도도혜. 35살, 고등학교 수학교사다.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이라는 세계를 좋아한다.
삶도 수학처럼 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딱 떨어지는 답도 없고, 답도 없는 문제를 껴안고 낑낑 대는 날이 대부분인 일상이다.
가끔씩은 이불킥을 하게 되는 답을 써놓고 부끄럽고 한심해서 잠못 드는 날도 있다.
수학에서는 이 모든 걸 오답이라고 한다.
난 누가 수학선생 아니랄까봐 삶의 오답을 쓸 때마다, 다시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오답노트를 적곤 한다. 
이름하여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


수학에서는 문제를 틀릴 때마다 오답 노트를 만들어 기록하고, 왜 틀렸는지 분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복기해야만 다음에 똑같은 오답을 쓰지 않게 된다.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 역시 실수와 오류의 확률을 줄여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오답노트는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오답 중 하나를 고백해보면, ‘진상’이라는 진상을 만났다는 거다. 법적으로 헤어진 지 1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빠이빠이, 이혼 도장을 찍고 법원 정문 앞에서 헤어진 후 그 전과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오답노트에는 ‘진상 접근 금지’라고 써있지만, 그게 쉽나? 학교도, 집도 가까워 자주 마주치게 되고, 결정적으로 집을 비울 때마다 안심하고 동동이를 맡길 수 있는 것은 이 사람뿐이다. 


오늘도 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수능출제위원으로 차출되어 내일부터 한달 동안 감금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라 동동이를 보살펴줄 아빠가 필요했다. 동동이를 품에 안고 벨을 눌렀다. ‘왔어?’하면서 문을 열어주는데 진상, 긴 타월로 허리를 감은 채 알몸 차림이다. 

“옷 좀 입지?”

“볼 거 다 봤던 사이에 무슨. 왜 갑자기 맡기는 거야?”

“일이 좀 생겼어. 한 달 정도 걸릴 거야.”

“무슨 일인데? 어디, 아파?”

진상, 갑자기 목소리 다정해지더니 훅 내게 다가섰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여자만 보면 작업을 거는 진상의 오랜 습성, 못 말린다.  

“그런 거 아냐. 교육 들어가.” 

대충 둘러대자 진상의 다정이 동동이로 향했다. 동동이를 번쩍 안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나 컵라면 먹으려하는데 같이 먹을래?”

“됐어. 애인이 바쁜가봐? 웬일로 금요일 밤에 혼자 라면 먹고.”

“나 연애 끊었다.”

“차라리 담배 끊었다는 말을 믿을게.”

“만사가 귀찮다. 재혼할 것도 아닌데. ... 재결합이면 몰라도.”

알몸차림의 진상이 나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참 중증이다. 그런데 저 눈빛! 싫지 않다.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오답노트는 늘 진상의 그윽한 눈빛을 주의하라는 분석을 남겼다. 진상의 곧고 형형하며 그윽하기까지 한 눈빛을 보면 순간 심장이 움직이는 거다. 젠장,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남자랑 잠자리를 한지도 너무 오래됐다. 


쿵하던 심장은 누군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함께 아주 쉽게 평온을 되찾았다. 그럼 그렇지, 현관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알몸차림의 진상도, 침묵하던 나도, ‘오빠’하며 들어오던 여자도 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동동이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꼬리를 흔들며 그 여자에게 가는데...

“교수님 저랑 헤어지신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새 새로 연애하세요?”

진상은 당황하며 말했다.

“어? 그게 아니고...”

“새벽에 톡 받고 괜히 제가 오해했나 보네요... 갈게요.”

그녀보다 내가 먼저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가지 마세요”

“네?”

“백퍼 그쪽이랑 다시 잘해보고 싶어서 찔러본 거 맞아요. 본인은 연애 끊었다고 하지만 중독성도 높고 의지력도 약한 인간이라 어림없거든요.”

그리고 진상에게 뻑큐 하나를 찐하게 먹이고 문을 닫고 쾅 나와버렸다. 도도하게 나왔지만 마음 한 켠은 분했다. 

“또 움찔했어. 움찔했다고!”

집에 돌아와 ‘흑역사 오답노트’를 펼쳤다. 

“개진상이 재결합 멘트를 날렸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개소리 씨부리지 말라고 퍼부었어야 하는데... 아악!!!! 잊지 말자. 남자의 진심은 지난 행적에 정비례하고 입터는 것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2화에서 계속>


  <드라마스페셜 2024>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KvNPrgsDXgg 

  <흑역사 오답노트> FULL-VOD  https://www.youtube.com/watch?v=MaL_I4PnpDo&t=79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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