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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Oct 26. 2024

그게 여자냐? 좀비지. 좀비 피하다 죽이면 정당방위야.

"괴물" (2)

드라마스페셜, 2014년작, 작가 박필주, 감독 김종연
“아버지. 나 사람 죽인 것 같아. 해결 좀 해줘요.”
“지금 당장 호텔로 돌아가. 사람하나 보낼 테니..” 


변호사 현수 아저씨가 호텔 룸에 도착한 것은 아버지와 통화를 마치고 한두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는 그를 돈 몇 푼 쥐어주면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양복쟁이 아저씨로 치부했는데, 발아래 죽어있는 시신 앞에서 현수 아저씨의 시선은 기대 이상으로 담담했다. 담담하게 현수 아저씨는 방 안을 둘러보고, 주변에 떨어진 화장품, 핸드폰, 지갑, 주사기 등을 살펴봤다. 죽은 그녀의 목에 손을 대 맥박을 확인했다. 

“태석아, 죽은 시간 기억해?”

“몰라요. 한 두시간 됐나? 진짜 죽었어요? 혹시 쇼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된 거야? 목 졸라 죽인 거야?”

“조른 기억은 나는데 잘 기억이 안나요.”

“자수해.”

“현수 아저씨, 안돼요. 저 폐쇄공포증 있단 말이에요.”

“수사나 부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어디서 증거 튀어나올지 지금은 몰라. 잘못 덮으려다간 흔적만 남긴다. 모든 정황상 범인은 너야! 하지만 네가 죽인 건 아냐.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넌 무죄 판결 받을 수 있어. 나만 믿고 자수해.”


변호사 이현수. 아버지 창훈과 현수 아저씨가 어떻게 인연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집안에 큰 문제가 생길 경우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은 늘 현수 아저씨였다. 


“자수해. 그리고 기억 나지 않는다고 그래. 샤워하고 침실에 갔더니 그 여자가 미친 사람처럼 칼을 쥐고 덤볐고, 문 닫아걸고 못나가게 막아서, 나도 모르게 뺨을 때렸고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후론 기억이 없다고 말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현수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법은 진실과 정의가 아니었다.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진실을 캐게 될 때도 있고, 정의를 추구할 때도 있지만 그거야 말로 운이거나 별책부록일 뿐, 실제로 모든 법이 의도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목적에 이르는 절차일 뿐이라고 했다. 자수를 하고 이 사건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풀어갈 때 현수 아저씨는 법이 나의 무죄를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자신했고, 아버지의 재력으로 이 움직임을 조력하는 언론도 살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와 함께 자수를 하러 경찰서로 향했다. 


아저씨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자수를 했고, 취조실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역할을 해내갔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열 살 사고 현장에서 생긴 폐쇄 공포증은 고맙게도 경찰들을 쫄게 만들고, 언론을 움직이는 무기가 됐다. 취조를 받던 중 숨이 안 쉬어져 발작을 하며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소동이 몇 번 있었고, 경찰서 한복판에서 땀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며 형사들에게 제압되는 장면은 기사거리가 필요한 언론의 카메라에 담겨 포털사이트의 일면을 장식했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다. 현수아저씨는 아빠와 함께 윗선을 매수하면서도, 정교한 알리바이로 나의 무죄를 하나하나 입증해 나갔다. 여론도 나의 편이 되어갔다. 


“사망한 피해자의 마약 투여 사실이 제기되면서 피해 여성의 과거 행적 또한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피해 여성이 강남 인근에서 남성을 유혹해 마약을 투여하고 하룻밤을 가진 후 협박하는 수법으로 돈을 갈취하는 전문 사기단의 일원임이 알려지면서 피의자 한 모군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기획의도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을 때 눈에 밟히는 검사 한 명이 나타났다. 채진욱 검사. 첫 만남부터 나는 그의 사근사근함이, 너스레가, 설렁설렁함이 마음에 걸렸다. 

“약까지 하고 칼 들고 덤비는 여자!! 무섭지. 그게 여자냐? 좀비지. 좀비 피하다 죽였으면 당연히 정당방위야. 그치? 정당방위로 가자. 피해자가 먼저 공격하면서 네가 살짝 피하다 민 걸로... 이렇게 스토리 만들면 대충 끝나겠네. 됐지? 좋게, 좋게! 서로 편하게? 윗선 당부도 있고, 아버지 빽도 대단하던데...”    


사람 마음은 묘하다. 내가 준비한 거짓말들을 검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먼저 읊조리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채 나오는 말들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느껴져 채검사 앞에서는 가급적 침묵을 지켰다. 

“기억 안 나요.. 저도 정당방위면 좋겠는데요. 진짜 기억이 안 나요. 샤워하고 침실에 들어갔더니 그 여자가 칼 들고 덤벼들었어요. 미친 사람처럼요. 문을 닫아걸고 못 나가게 막길래...”

“잘 외웠네. 경찰 조사 때랑 토씨 하나 안 틀려. 변호사가 시키디? 기억 안 난다. 모른다. 최대한 말을 아껴라. 청문회처럼 해야 유리하다. 그래?”

“진실이니까 같은 말만 하죠.”

“난 진실 따윈 몰라. 사실만 밝히면 돼. 내가 본 사실은 기자들 불러놓고 쇼하고 인맥 동원해 압박하는 너 같은 새끼는 꼭 감옥에 처넣어야한다는 거야!” 

                                                                                                                            <3화에 계속>


<드라마스페셜 2024>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bhN8d2Hh0

<드라마스페셜 괴물>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M0nglMADKk&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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