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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Oct 26. 2024

내 이름은 태석. 사람을 죽인 것 같다.

"괴물" (1)

드라마스페셜, 2014년작, 작가 박필주, 감독 김종연


내 이름은 태석. 내 삶의 중요한 국면에서 아빠가 전문적으로 해낸 일이 있다면 빼내는 거였다. 처음으로 아빠가 나를 빼낸 건 열 살 때였다. 전복된 차에 엄마와 반나절 넘게 갇혀 있었다. 미친 듯이 차문을 열려 했지만 도랑에 낀 차문은 열리지 않았다. 차 유리에 머리가 박힌 엄마는 눈을 뜬 채 죽었고, 차 안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거기로부터 나를 빼낸 것이 아빠였고, 이후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열 번도 넘게 나를 빼냈다. 마약을 할 때도, 폭력을 쓸 때도, 술을 마실 때도, 그는 나의 사고를 덮어줬고, 그만큼의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경기장은 공평하지 않았고,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특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덜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아무렇게나 문질러대며 살아가고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술집에서 만난 한 여자와 호텔에 들어갔다. 어떤 여자든 화장을 벗기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복잡한 욕망이 드러난다. 그날 만난 여자의 욕망은 내가 생각했던 에너지보다 강렬했다.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오늘 따라 거품목욕을 한 후 천천히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핸드폰을 가지러 침실로 조용히 들어갔는데 이미 샤워를 마치고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수상했다. 


‘얘 봐라?’ 웃음이 났다. 주사기로 주스에 약을 타고 있는 거였다. 

주사기, 마약, 이런 것은 오늘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오늘은 엄마의 기일. 나를 위로할 평화를 원했다. 뺨을 후려쳤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그녀의 뺨을 후려친 것은 능력은 부족하면서 욕망만 앞선 한 인간에 대한 점잖은 타이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방바닥에 그녀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헤모포비아라고 들어봤나? 

피를 보자마자 숨이 안 쉬어지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분노가 끝난 자리에 두려움이 피어났다. 여기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피에 대한 공포가 생긴 것은 차 유리에 머리가 박힌 엄마의 죽음을 마주했던 그 날 이후였다. 너무 숨이 막혀 일단 여기서부터 빠져나가야겠다는 본능에 방문을 잡는 순간, 그녀가 막아섰다.  

“튀려구? 안 되지. 피 봤음 피 값도 쳐줘야지!”


쿵쾅쿵쾅.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온 몸에 땀이 맺혔다. 피범벅이 된 차 안에서 엄마를 잃었을 때가 떠올랐다. 하필 엄마 기일 날, 피를 보다니... 그때 입은 손상은 아마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다. 홀로 그 차에서 빠져나오면서 난 엄마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 생각했고, 어디선가 누군가의 피를 마주할 때마다 몸서리쳤다. 


엄마.. 엄마!!! 


그녀를 밀치고 나가려 했지만 방문을 잡은 그녀의 손은 단호했다. 순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버둥대면서 그녀는 내 얼굴을 할퀴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그녀의 코피가 내 어깨 위로 떨어졌고, 피는 나를 점점 더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밀쳤다. 쿵! 그녀가 넘어지는 순간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순간의 정적. 섬뜩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열린 침실 문 너머 그녀가 쓰러져있었고, 그녀의 뒷머리에서 선홍색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서 뛰쳐나와 호텔을 빠져나왔다.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빠 창훈한테 전화를 걸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른 때에 비해 빼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빠는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나의 행동을 덮을 것이고, 나의 약점 역시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나 사람 죽인 것 같아. 해결 좀 해줘요. 알잖아 아버지. 나 감옥 가느니 죽는 게 나아. 아버지도 금뱃지 달아야 하잖아. 살인자 자식 둔 금뱃지 봤어? ”

“지금 당장 호텔로 돌아가. 사람하나 보낼 테니..” 

                                                                                                                        <2화에 계속>


<드라마스페셜 2024>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bhN8d2Hh0

<드라마스페셜 괴물>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M0nglMADKk&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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