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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Oct 26. 2024

돈이 전부인 세상에도 룰은 있는 거다.

"괴물" (3)

드라마스페셜, 2014년작, 작가 박필주, 감독 김종연


“잘 외웠네. 경찰 조사 때랑 토씨 하나 안 틀려. 변호사가 시키디? 기억 안 난다. 모른다. 최대한 말을 아껴라. 청문회처럼 해야 유리하다. 그래?” 
“진실이니까 같은 말만 하죠.” 
“난 진실 따윈 몰라. 사실만 밝히면 돼. 내가 본 사실은 기자들 불러놓고 쇼하고 인맥 동원해 압박하는 너 같은 새끼는 꼭 감옥에 처넣어야한다는 거야!” 

 진욱 검사는 사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고, 부검결과 나와도 똑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주도면밀한 현수 아저씨가 부검결과에서도 마약이 검출될 수 있게 손을 써놔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집요해 보이는 진욱 검사의 모습이 마음에 쓰였다. 그 집요함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 것 같은 불안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를 마주하는 어느 순간에는 일이 아주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분이 더럽고 찜찜한 것이었다. 


“어제 부검걸과가 나왔어.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그날 넌 피해자와 같이 마약을 투여했고, 적당히 즐기다가 어떤 다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너 과거 서류를 뒤져봤거든. 폭력 기소만 두 건이었고 다 돈으로 합의했더군. 결국 이런 것들이 살인까지 하게 만든 거지. 그날 밤 피해자랑 같이 마약을 하고 즐기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생겼고, 화가 난 넌 피해자를 구타하기 시작했고, 그런데 얘가 반항하니깐 홧김에 목을 졸라 죽인 거야. 그렇지?”


목을 졸라 죽였냐구? 

처음 현장에 왔을 때, 현수 아저씨도 물었던 거다. 그건 절대 아니다. 목을 조른 것 맞지만 그것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다. 넘어지다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가 깨져 죽은 거다. 그런데 부검결과가 나왔는데 사인이 질식사란다. 


뭐지? 뭘까?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진욱 검사가 죽은 그녀의 현장 사진을 들이민다. 

“이거 보면 기억이 나는데 도움이 될까? 피하지 마. 잊어버리면 안 되는 얼굴이잖아!  평생 그 머릿속에 각인시켜야지! 왜? 네가 죽인 사람이니까! 미안하지도 않아? 그 애 이제 스물 하나야.”


피 웅덩이 속의 그녀 얼굴과 눈이 마주치자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비명을 지르고 버둥대기 시작했다. 조사실 바깥에 있던 현수 아저씨가 비명소리를 듣고 급하게 들어와 소리를 지른다.  

“이거 지금 강압수사 아닙니까?”

조사실을 빠져 나온 나는 정신을 차린 후 현수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왜 사인이 질식사야? 이상하잖아. 목 조른 건 그 애 머리 깨지기 전이었는데.... 아닌가? 맞는데? 그렇잖아?”

“태석아. 내가 한 말 잊었구나. 넌 아무 것도 기억 못해! 패닉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뭐든 기억하기 시작하면 넌 무죄가 될 수 없어. 그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살인이란 증거니까.”

현수 아저씨의 목소리는 대담했다. 이 대담함의 근저에 나에 대한 애정 따위가 있을리 없다. 그의 목표는 오롯이 나의 무죄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돈과 인정을 받는 거니깐. 무심코 바라본 그의 눈빛이 값싸고 저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죽인 거 아니야?”


내가 피를 보고 당황해 몸싸움 중 목을 조른 기억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 때문에 그녀가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문밖으로 도망을 친 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설 때 본 것은 테이블 옆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 모습이었다. 쓰러진 것뿐이지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녀를 질식하여 죽게 한 걸까? 현수 아저씨 외에는 의심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왜 죽였을까? 그녀가 죽고, 내가 자수를 하고, 자신이 빼내야만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깐? 

미친 새끼. 


현수아저씨를 돌아본다. 돈이 전부인 세상, 그래서 대한민국은 나같은 놈이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돈이 전부인 천국에도 룰은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건 아니잖아. 그게 나의 윤리였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내가 계속 괴로운 걸 보면... 그녀를 떠올릴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죄책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새겨지는 죄책감.  

“아저씨가 호텔 침실 들어갔을 때 말이야. 그 애 살아 있었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왜 죽였어? 왜 죽였냐구!”

                                                                                                                                                        <4화에 계속>


<드라마스페셜 2024>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bhN8d2Hh0

<드라마스페셜 괴물>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M0nglMADKk&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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