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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 Oct 26. 2024

세상사 대부분은 돈 때문이란다. 넌 달라?  

"괴물" (4)

드라마스페셜, 2014년작, 작가 박필주, 감독 김종연
“아저씨가 호텔 침실 들어갔을 때 말이야. 그 애 살아 있었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왜 죽였어? 왜 죽였냐구!”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아저씨가 말했다. 

“살인을 말하는 거면 태석아. 그 여자를 죽인 건 너야. 왜 이래? 그깟 년 하나 죽은 것 가지고. 그년이 죽은 것은 너한테 돈 뜯어내려 달라붙은 것 때문이야. 살아봤자 막 구를 인생. 그런 년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죽었으니까! 이미 죽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살아 있었잖아. 살아 있는데! 살릴 수 있었는데!”

“그년이 살았으면 넌 폭행으로 실형이야. 강간 미수까지 추가했겠지. 그런 여자가 돈 뜯어낼 기회 놓칠 거 같아? 그나마 죽었으니 도망칠 구멍이 생겼지. 입만 다물면 넌 무사히 나올 수 있어.”

“내가 왜 입을 다물어? 살인자는 넌데!” 

“내가 그 애를 죽일 리 없잖아. 태석아. 널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러면 형 진짜 힘들다.” 

“진짜 모른다는 거지?”

“사람을 어떻게 죽여? 생각조차 안 해봤다.”

“나한테 가르쳐준 매뉴얼을 그대로 써먹으면 안되지. 뭐 이렇게 창의성이 없어? 모른다. 기억 안 난다.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해라! 나한테 가르쳐놓고 그걸 홀랑 써먹어?”

“태석아, 그건 너의 선택이었어. 돈값을 하라면서 그 방에 나 혼자 들어가라며? 알아서 확인하고 처리하라며? 넌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고, 외면하려 했고... 만약 내가 죽였다 하더라도 그 역시 너의 선택이었어.” 


엄마와 차 안에 갇혀있을 때도 그랬다. 피범벅이 된 엄마가 손끝을 힘들게 흔들면서 핸드폰을 가리켰고 ‘119 전화해. 전화.’ 쥐어짜듯 말했었다. 난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아버렸다. 엄마가 죽을 때도, 처음 만난 그녀가 죽을 때도 난 보고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내가 죽인 건가? 


일주일 후 진욱 검사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본인이 추가로 알아낸 사실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너 폐쇄공포증에 피공포증까지 있더라. 그렇다면 네가 그녀를 죽였을 수 없어. 갇힌 침실 공간에서 피를 본 내가 누군가의 목을 졸라 죽일 수는 없어. 미쳐 날뛸 수는 있어도.” 

그러면서 나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살인자는 현수 아저씨라는 결론. 

“외면하지 마! 그 놈이 살인자란 거 넌 알고 있어. 넌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까! 그럼 네가 나온 후에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이 범인이지! 나도 왜 그놈이 그녀를 죽였는지는 몰라. 목적이 돈인지 쾌감인지! 하지만 네가 입 다물면 또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어. 그 놈 처음 아냐. 너 속이고 그 짧은 시간에 사람 죽이는 거. 보통 사람은 그렇게 못해! 놈이 연루된 사건만도 두 건이야. 다 무혐의로 끝났어. 그 애.... 그 여자애.... 겨우 스물 하나다.”


진욱은 내게 피하지 말라고 말했다. 교복을 입은 그녀의 사진을 보여줬다. 평범한 소녀였다. 실수도 하고 헛발질도 하지만,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나 제대로 살지도 모를 스물 한살의 여자.


사실에 사실이 모여 사건의 실체가 구체화되기 시작하니, 현수 아저씨는 아빠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저축은행 비리의 실체를 알고 있던 그가 자신의 조커를 쓰기 시작한 거다. 선거를 앞둔 아빠는 현수 아저씨의 협박이 못마땅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 같다. 진욱 검사가 윗선의 지시로 사건에서 배제되었고, 그렇게 살인사건의 진실은 묻히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도 마지막 조커가 있었다.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아저씨를 택했다면, 아저씨 잘 나가는 변호사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사 대부분은 돈 때문이란다.”

“돈? 겨우 돈 때문이라고?”

“겨우라니. 넌 모르겠지만 돈 번다는 건 참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야. 이거 봐. 피 토하며 공부해 잘 나가는 변호사 되어도 너 같은 놈 뒤치닥꺼리나 하고 있잖아. 겨우 돈 때문에!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너라고 다를 것 같아?”

“ 달라! 달라!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 돈 때문에 사람까지 죽이는 너 같은 놈이랑 절대로.... 같을 리 없잖아.”


진욱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마약를 투여한 것도, 살인도 진태 아저씨가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했다. 그 증거로 아저씨가 침실에 들어간 후로 아빠와 통화한 내역을 제출했다. 아빠는 누구와 통화하면 증거를 남긴다. 거기에 피해자의 마지막 목소리가 새겨져 있었다. 

“살려주세요. 아저씨...”  


그 목소리 뒤에 느긋한 진태 아저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5억은 더 플러스 하시죠.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요.”

아빠가 통화내역을 진욱 검사에게 넘기는 것의 대가는 검찰이 저축은행 비리를 눈감아주는 것이었다. 살인혐의로 구속된 현수 아저씨는 의외로 담담했다. 조사실에서 그는 비웃듯이 진욱 검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연수원 축구 경기 때 너희 팀은 늘 졌었지. 그 때 내가 충고했잖아. 반칙도 전술이라고. 이제 내 충고를 들은 거야? 페어플레이가 전부인 줄 알던 채검이? 그런데 말이야. 저 잘난 아들놈, 매번 사고 치면 아빠가 빼주던 한태석이란 놈이 정말로 몰랐다고 믿어?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거야?”

“무슨 개수작이야?”

“하긴 그렇게 믿어야 너도 반칙한 보람이 있겠지?”

진욱 검사가 현수 아저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모니터실에서 이 모든 것을 구경하고 있던 아빠의 표정에는 이제 다 끝났다는 여유로움이 묻어있었지만, 그 옆에 앉아 있던 나는 현수 아저씨의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한태석이란 놈이 정말 몰랐다고 믿어?”. 

복도에서 수갑을 차고 호송되어 가는 진태 아저씨와 마주쳤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괴물의 웃음이 새겨지더니 나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태석아, 난 모두 알고 있어.” 


아저씨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다시 돌아온 호텔 침실에서 쓰러져있던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것을 정말 현수 아저씨는 알고 있는 것일까? 현수 아저씨가 쓰러진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을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똑똑히 봤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러지 마세요!’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조용히 침실 문을 닫고 TV리모콘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는 사실을, 그래서 거실에는 요란한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는 사실을 현수 아저씨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태석아, 아직도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해?”

현수 아저씨의 비릿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메아리쳤다.

                                                                                                                                     <끝>


<드라마스페셜 2024>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bhN8d2Hh0

<드라마스페셜 괴물>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M0nglMADKk&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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